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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협회장 해임

- 2,500년전 고대 그리스에서 전쟁시 군대를 지휘할 총사령관을 투표로 선출하지만, 총사령관이 잘못하면 시민들이 도편투표로 추방한다.

- 오늘날 영미계 국가에서 직무수행을 잘못하면 입법, 행정, 사법부 공직자를 임기만료 전에 주민투표로 해임한다.

- 한국에서는 국가 자원을 사용하다 문제를 일으키고 온 국민이 분노해도 임기 전에 해임할 방법이 없다.

◆ 고대 그리스 도편추방: 당시 매년 초 아테네 시민은 도편투표를 할 수 있고, 대략 3만명의 시민이 각자 한 개의 도편에 이름을 써서 투표 항아리에 넣어 투표를 한 후, 동일한 이름이 6,000개 이상의 도편에서 나온다면 그 사람을 10년 간 추방한다.

Saturday 02.24.24
Posted by HUE
 

2023년 한 해 동안 저의 약자 응원글에 20 회 이상 참여하신 페친들께 감사를 표합니다.

115명의 이름 (가나다 순)

Bae Ĵongtae Chan Bae Lee Chan-Mun Jung Dong Jin Kim Kim Dongmi Pyun Eunjoo Kim EunJung Eunice Lee HoYoung Choi Hyun-su Lee Ivan Jin Joonyoung Sung Joshua Shin Jugwon Kabarett-kr Kim Jun Han Kyeongho Yi Kyungho Dean Lee Jongha Mincheol Tak Ostin Kwak Paris Ienne Park Seunghun Rose Song Samuel Kim Hyung Kyun Shin Ok Wie Sophia Park Wookje Sung Wookyu Kim YJ Yi 고낙규 구본수 권재복 권치영 김경표 김관형 김기홍 김명식 김미옥 김복근 김봉호 김상명 김설이 김성주 김성진 김영연 김영호 김정락 김정식 김종진 김준학 김학수 김환생 남김선태 마용철 맹꽁이 박계순 박광일 박근식 박대연 박동희 박성범 박시철 박영미 박출 박헌중 배인현 백영기 백형근 변승만 송수황 송치현 신재환 안창민 양정모 오영숙 우원우 유기흥 윤무종 이경은 이경재 이경찬 이민화 이성목 이용우 이재철 이재흥 이정무 이정하 이종원 이충열 임종왕 장정현 전수인 정금태 정기자 정석중 정순창 정우전 정원각 정현식 정훈회 조기철 조선규 조용철 조은희 진영석 최승혜 최영임 최은희 최충국 허현숙 현성김 홍근 홍대춘 홍승희 황인국

Saturday 01.06.24
Posted by HUE
 

2023년 저의 약자 응원글에 동참하신 1,225분의 페친들 이름과 116개 포스팅 주소

지난 한해 동안 1,225분의 페친들께서 제가 포스팅한 약자 응원글 116개에 8,559개의 좋아요를 눌러 약자 응원에 동참하셨습니다.

1,225분의 페친들은 116개의 약자 응원글 중 1인 평균 7개의 약자 응원글에 동참하셨습니다.

1,225명의 이름(가나다순)

Albert MyeongJin Lee An Nie Andy Kwon Baagii Mgl Bae Ĵongtae BJ Kim Bond Kim Bong Yang Brandon Hwang Brian Lee Byeongsam Na ByungHyun Kang Byung-sun Lee Chae Paul Chaeyoun Kim Chan Bae Lee Chan-Mun Jung Charlie Yim ChongWoo Keith Kimb Choongho Lee Chris Chung Chris Park Chris Suh Christina Cho Daeyoon Kang Dane Quesadilla Daniel Khang David Kim David Lee Deok Hoon Kang Dohoon Kim Dong Jin Kim Kim Dong Wook Yang Dong Yeoun Kim Dongchan Kim Dongcheul Kim Donghun Shin Dong-in Kim Dongmi Pyun Ds Kang Duhee Jin EokSoo Kim Eugene Shim Eun Jang Cho Eun Min Kim Eun Won Seo Eunhee Choi Eunice Clara Lee Eunjoo Kim EunJung Eunice Lee Eunmi Suh F.I. Zoo Francesco Nar Geumdong Lee Gi Hyun Lee Gidae Song Gil Mok Gil Seong JO Gil-Hun Choi Gloria Bae Gye Jeong Kang Gyu Yeong Kyeong Gyver Tc Haan Gil Yi Hachun Sung Hae Li Her Haeseok Anthony Lee Hangil Oh Heeam Seo Heung Nam Kim Hj Shin HM Lee HO Nami Hokyun Cho Holly Jo HoYoung Choi HunJae Chung Hyang-yi Jeon Hyeon Gyeong Yu Hyosup Woo Hyun Jun Shim Hyun Suh 서현 Hyung Man Park Hyung-chul Park Hyungsoo Ryoo Hyun-su Lee Inchul Park Inseong Choe Ivan Jin Jae-Hee Kim Jaehyun Lee Jaeoh Woo JaeYoung Huh JaiBong Kim James Kang Jasbo Jang Jason S. Lee Jay H. Sean Jay Jeon Jeong Tae Park Ji Young Jung Jin Kim Jingoo Kang Jinhwan Kim Jini JiMyung Yoon Jinsu Park Jinwon Jang Jiwon Yeom Kwong John JH Lee John Roh John Siwoo Lee Jong Cheol Lee Jong Hyun Moon Jong-Chol An Jongju Yang Jongkil Son Jongtae Oh Jongwon Lee JoongBool An Joonghoon Jo Joonseok Jeong Joonyoung Sung JooYong Kim Jooyoung Lee Joseph Hong Joseph Jun Shik Cho Joshua Shin Jugwon Kabarett-kr Kim Julie Kim Julius Jinwoo Kim Jun Han Jung Duk-young Jung Yup Bang Junghoon Yoo Jungpil Lee Junkang Kim JunSeong Kim Justin Jeon Justin Park Jy Eom Kandy Kung Khaos Utopia Ki Woong Park Kim Pil Rum Kim Yong Goo Kunnyun Kim Kyeongho Yi Kyong H. Ra Kyuho Hwang Kyung Bo Yoon Kyungho Dean Lee Hyang Lee Jea Suk Lee Jongha Lee Kyun Lee Yong Jhoon Lennon Ree Lion Kim Man-Ho Kang MasakiKun Kim Michael Youngsang Moh Mija Kang Mike Lee MiKyung Kim Mimi Cho Mincheol Tak Ming Rosemarijuana Minjeong Kee Minseon Ahn Minsoo Ko Monddha Kim Moon Jung Ok Myoungkuk Kim Myung Hee Yoon Myungwon Lee Na Joan Nakjibibim RohKim Nakwon Lee Namson Kang Nari E Park Nigar F Muhamad O Se Eun Oh Ulpyo Yul Ostin Kwak PA Ran Paris Ienne Park Myoungcheon Park Seunghun Patience Joseph Paul Oh Ri Mi Richard Yoon Rick Byungdae Min Rose Song Samuel Kim Hyung Kyun Sang Chul Ma Sang Kwon Jung Sangjin Chang Sangkoog Kim Sangmin Royce Lee Sang-Mok Lee Sang-Seob Park Sang-Sook Shin Sara Kim Scipio Nasica Sean Kim Sean Sewook Seo Sean Song Seho Oh Sejin Eo Seok-ju Cho Seol Hee Seong Yoon Shin SeongCheol Yoon Seongmin Kwon Seong-seek Kim Seung Hee Jeon Seungju Choi Sewoong Song Shei-heon Kim Sherry Shen Shin Ok Wie Shiwhang Kang Si Chang Simon HG Lee Sisyphus Da Corinth Sj Park Sj Steve Sohee Kim Soo Il Hyun Soomi Kweon Sophia Park Steve Suh Suk Hee Lee Suk-chan Kim Sukho Kim Suk-Kyoung Hong Sungho Yoon Sungyong Lee Sunyoung Lee Taesuh Park Taesun Kang Tatjana Janković Timothy Kwon Ette Ty Li Wan Seop Kim Wanda Bunnylee Won Ik Lee Woo Cheol Lee Wook Kim Wookje Sung Wookyu Kim Yeonghwa Lee Yi Haakrho YJ Rhee YJ Yi Yoku Hara Yong Il Shin Yong Woon Yun YongGi Kang Yong-Hoon Seo Yonghun Hwang Yoo Jung Ahn Yoon Cho Yoonhee Choi YoonYi Son Melbourne You Chan Jeong Young Jin Kim Young KO Youngbaek Lee YoungGeun Park Youngi Noe Youngwoo Lee Yuik Kim Yujin Im Yung Bin Kwak Zaggi Thin いまち ゆみ 강규수 강길섭 강병훈 강석호 강소연 강신진 강신형 강용구 강윤식 강종서 강치권 강태구 강태윤 강현석 강현숙 강현주 강효백 강희중 거부기 경영택 계승범 고낙규 고미라 고미숙 고성우 고정석 공관 공기순 공두영 공영만 공영현 공영환 곽경숙 곽대규 곽대종 곽종욱 곽창신 곽효연 구본상 구본수 구본영 구봉조 구자환 권기훈 권수정 권순형 권영태 권재복 권중원 권지교 권찬규 권치영 권혜경 권혜반 금민경 긍고니 기영식 길예경 김경석 김경숙 김경탁 김경표 김경환 김계선 김관철 김관형 김국현 김권식 김귀상 김귀자 김규범 김규호 김기웅 김기정 김기태 김기홍 김김동욱 김남형 김대중 김도연 김도영 김도훈 김동규 김동북 김동완 김동훈 김두호 김래환 김명식 김명실 金明鎭 김문재 김미경 김미란 김미송 김미옥 김병국 김병돈 김병배 김병철 김병탁 김병현 김병희 김보현 김복근 김봉철 김봉호 김비주 김사랑 김삼종 김상명 김상옥 김상재 김상준 김상철 김상태 김선관 김선명 김선종 김설이 김성곤 김성수 김성신 김성일 김성주 김성준 김성진 김성훈 김성희 김수환 김숙희 김순식 김순주 김순흥 김승택 김양석 김양수 김양옥 김양희 김영미 김영선 김영식 김영연 김영욱 김영재 김영찬 김영태 김영학 김영호 김용대 김용만 김용범 김용순 김용호 김용환 김원근 김원주 김원천 김윤태 김은혜 김응주 김이승현 김이훈 김익균 김일남 김일식 김자곤 김장현 김재석 김재식 김재욱 김재유 김재흥 김정대 김정락 김정범 김정보 김정식 김정원 김정윤 김정환 김종근 김종성 김종진 김종헌 김종현 김주생 김주영 김주혁 김주호 김준강 김준봉 김준학 김중기 김지선 김지웅 김지현 김진 김진대 김진배 김진하 김진형 김진희 김차복 김찬숙 金昌 德 김창남 김창환 김채영 김천일 김철회 김청남 김충현 김치규 김칠현 김태봉 김태평 김태형 김평호 김하나 김하영 김학수 김해경 김해동 김해안 김헌용 김혁기 김현경 김현동 김현상 김현주 김형기 김형진 김형철 김형칠 김혜경 김환생 김효상 김효준 김흥순 김희세 김희숭 김희옥 김희천 김희철 나광국 나동성 나명흠 나성철 나주봉 나준연 나지혜 남김계산 남김선태 남은주 남정우 남현영 냉이 노마드 노상호 노연숙 노원식 도야지 두눈 또늘 뚱딴지 라경춘 라미나 蘭撫 류 대완 류경 류경렬 류다현 류덕렬 류돈하 류미옥 류석준 류운철 류윤태 류일제 류제봉 류준열 리자바 리제임스 리향 마마품 마용철 맹꽁이 맹석주 문봉철 문의선 문준우 문태인 문환구 민경국 민경화 민병기 민병수 민병창 민영기 민영록 박강연 박경석 박경세 박경현 박계순 박광일 박근식 박기홍 박낙순 박노봉 박노육 박대연 박동희 박미선 박미순 박미애 박민규 박민수 박상언 박상운 박상조 박선미 박선화 박선후 박성민 박성범 박소순 박송자 박슬기 박시철 박양희 박영길 박영미 박영수 박영철 박영환 박용호 박우행 박웅철 박이수 박인혁 박재중 박정규 박정석 박정희 박종관 박종균 박종석 박종업 박종천 박주현 박준화 박중협 박지훈 박진솔 박진우 박찬준 박철은 박철현 박출 박충구 박태균 박태웅 박한규 박해성 박해용 박헌중 박현석 박형래 박호규 박홍순 방미진 방태복 배근석 배병두 배성만 배윤기 배인현 배정홍 배창섭 배효수 백대현 백도경 백승동 백승종 백승훈 백영기 백영인 백오영미 백재호 백정원 백정진 백형근 백호성 변녹진 변승만 비지혜 새드피터 서나리 서동운 서무수 서병순 서순팔 서승연 서영란 서용복 서원종 서유선 서한겨레 석진기 성승제 성용강 성유현 성인자 小さい セブン 소경옥 小林 ケイコ 소신남 소엽 손병호 손양현 손영조 손원영 손재성 손제희 손채익 손호진 솔숲길 송경용 송경인 송명수 송분선 송수인 송수황 송영문 송영옥 송용철 송은규 송장섭 송장식 송재언 송주홍 송창욱 송치현 신동은 신동진 신동환 신동휘 신바다 신박진영 신상규 신상철 신서경 신순영 신영현 신용건 신윤철 신재환 신정주 신정희 신주영 신호철 심희옥 심희정 안기만 안달화 안동훈 안성혁 안영회 안은숙 안은하 안재금 안재현 안종철 안종타 안준호 안찬숙 안창민 안태극 안태성 안해근 안홍섭 안화미 안효주 안희균 알비노 양건수 양기준 양배근 양병운 양승필 양영모 양영철 양우석 양우진 양정모 양지원 양진철 어눌몽당 엄경희 엄승호 여성숙 여세현 염라 염상훈 염현섭 염호정 영이영이 오경섭 오민정 오어선장 오영숙 오영택 오완규 오재헌 오창훈 우신 우원우 우희종 원덕희 원수연 원유미 원준식 윈디박 유기흥 유명주 유문승 유미자 유상선 유승옥 유승진 유승현 유연택 유영국 유영대 유영모 유영미 유은희 유재풍 유재호 유환호 유희성 육윤수 육재윤 윤갑병 윤건희 윤경진 윤경환 윤대윤 윤무종 윤선경 윤성림 윤성집 윤양현 윤용운 윤정인 윤종기 윤지영 이강선 이강찬 이개터리 이경래 이경은 이경재 이경진 이경찬 이경희 이계성 이계영 이광휘 이규용 이근덕 이근윤 이글라라 이기동 이기섭 이기홍 이길재 이남수 이냐시오 이달석 이동석 이동철 이동환 이루다 이마로 이명균 이명수 이명재 이명준 이문식 이미경 이미혜 이민혁 이민화 이범석 이병옥 이병익 이병주 이병택 이부자 이상곤 이상국 이상림 이상미 이상민 이상암 이상오 이상옥 이상용 이상재 이상헌 이상훈 이석우 이선영 이선재 이성목 이성열 이성웅 이성희 이수경 이수련 이순애 이순영 이순혁 이승은 이승종 이연수 이영운 이영화 이영훈 이오하 이옥심 이용우 이용재 이우철 이욱현 이원재 이유정 이유진 이윤규 이윤아 이은경 이은재 이은희 이인선 이인철 이자민 이재걸 이재민 이재숙 이재영 이재철 이재흥 이정무 이정선 이정수 이정용 이정원 이정일 이정하 이정헌 이정휘 이정희 이종락 이종삼 이종오 이종원 이종진 이종희 이주연 이주용 이주호 이준석 이준호 이중무 이중표 이지수 이지연 이지영 이찬혁 이창기 이창수 이창원 이철민 이충남 이충열 이태직 이하나 이한태 이해옥 이해자 이향숙 이현수 이현우 이현준 이현호 이형열 이호균 이호남 이호산 이홍찬 이화섭 이희숙 이희영 인허당 일한 임도형 임동욱 임미령 임미화 임사영 임상훈 임성원 임영선 임용태 임재천 임정선 임종왕 임종철 임주화 임지형 임진혁 임태훈 임현하 장광수 장근태 장기준 장동혁 장무중 장미정 장병탁 장봉익 장선호 장성범 장성희 장세현 장순열 장순원 장영환 장원철 장윤석 장은주 장정현 장진우 장현풍 장호열 장환일 전근향 전년관 전동현 전병란 전상복 전수인 전영문 전원일 전위안 전윈 전인환 정 승일 정 승호 정경화 정금태 정기자 정다운 정동섭 정두수 정라영 정명화 정미정 정석중 정석훈 정성각 정순창 정승희 정시호 정연식 정영동 정영화 정예진 정요한 정우성 정우전 정원각 정유철 정은영 정인철 정재원 정재인 정재환 정재훈 정종환 정지홍 정진원 정창술 정천성 정태호 정해선 정현식 정훈회 조강수 조기봉 조기철 조미경 조미선 조병식 조병조 조석래 조선규 조성곤 조성범 조성원 조솔 조승국 조안석 조영봉 조영욱 조용철 조윤형 조은희 조재순 조정은 조진숙 조창섭 조한일 조항아 조혜경 조효섭 주공 주철수 주환김 지은 진교진 진산 진영석 진해정 차정원 차풍 채권석 채미경 채재화 채주병 채지연 천영기 최경남 최경민 최대남 최명순 최민철 최병철 최성순 최성택 최승혁 최승혜 최연금 최영기 최영임 최용팔 최운오 최원규 최유진 최윤만 최윤종 최은정 최은희 최이유영 최익주 최인호 최인희 최일기 최자웅 최재구 최재훈 최종학 최중철 최진택 최진혁 최창근 최창복 최충국 최충웅 최호석 최홍국 최회연 최효길 치이겼다 타샤 태영최 평상 표정식 푸른하늘 하늬 하리라 하모호모 한광운 한금아 한미우 한상희 韓奭熙 한송 한수아래 한슬기 한승봉 한신실 한영식 한유비 한진호 한창섭 한호석 함께 사랑 허관행 허소 허영조 허인구 허재일 허정찬 虛竹 허준영 허현숙 현성길 현성김 현정해 홍근 홍대춘 홍동선 홍리리 홍성광 홍성남 홍승희 홍영철 홍유진 홍은숙 홍은주 홍준기 홍태완 황경원 황보철 황보현 황성진 황인걸 황인국 황인석 黄将军 황정구 황준호 황철환

116개 약자응원글 포스팅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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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01.05.24
Posted by HUE
 

2023 1월 페이스북의 약자 응원에 새롭게 참여하신 페친 21명

Bond Kim Dongmi Pyun Jongju Yang Joonseok Jeong Michael Youngsang Moh PA Ran Rick Byungdae Min Sangjin Chang Tatjana Janković You Chan Jeong 김문재 김영재 김철회 김현주 박미선 신바다 양영모 오창훈 이정선 이주호 이충열

Monday 02.06.23
Posted by HUE
Comments: 1
 

2022 하반기 페이스북의 약자 응원에 새롭게 참여하신 페친 272명 이름

ABC 가나다순 (하단에 2022 하반기 약자 포스팅 25개 주소 포함)

Anri YJ Rhee Asuk Choi Buja Yap ByungHyun Kang CHo Myung Ok Christy Hyun Dane Quesadilla Eunhee Choi Eyun May Gyeoung Goossi Kim Hae Kyung Serena Kim Heo Eun Young Hyekyung Kwon Hyo-jin Kim Jason S. Lee Jeahong Bryan Oh Jean K. Min Jeong Hun Choi JG Roh Jiman Kim Jiyoen Park JiYoun Lee Joosan Jeong JooYong Kim Joseph Hong Julius Jinwoo Kim June Praxis JunSeong Kim Jy Eom Kennedy Kim Kyoung Hoon Chae Kyuho Hwang Lee Hyang Lee Jea Suk Lennon Ree Maru Mi Mija Kang Mijeong Lee Monddha Kim Myoungkuk Kim Nakwon Lee Nari E Park Samyul Kwon Sang Chul Ma Seung Oh Kim SeungIm Yoo Wonchan Shin Woo Cheol Lee Yong Il Shin Yoonhee Choi Yoonwon Kim Yujin Im Ziro Song 강상태 강혜란 경영택 고의곤 공기순 공영만 곽곽대원 곽재규 곽종욱 곽창근 구기항 구영손 구자환 구진모 권대우 권범수 권영구 權恩熙 권자현 금은점 김겸훈 김경희 김계선 김규범 김기태 김난희 김남희 김대철 김미란 김민호 김병배 김비주 김석기 김석원 김성일 김수옥 김수지 김신효 김양수 김언중 김연돈 김영대 김영순 김영일 김영찬 김용석 김원주 김은미 김은혜 김은희 김이하 김정락 김종현 김주호 김준학 김중기 김지완 김진배 김진영 김창환 김채영 김태관 김표무 김혁기 김형칠 김희옥 남김선태 노동익 노연숙 노용찬 노유솜 노호룡 또늘 뚱딴지 류근사 류돈하 류윤태 류일제 리제임스 맹꽁이 문운미 민경화 박국천 박남선 박만규 박세진 박순석 박이수 박정미 박종성 박종옥 박진우 박찬준 박형아 박흥식 방오리 배성만 배종령 백대현 백정진 서경석 서순팔 성다인 손영조 손호진 손홍균 송병섭 송세인 송인영 송장식 송재언 신서경 신영현 안기만 안성미 어눌몽당 여세현 여태원 영범하 오봉수 오완규 오재평 원덕희 윤대윤 윤무종 윤선경 윤성환 이강찬 이규원 이기호 이동주 이미경 이미남 이상민 이소 이용우 이원재 이인재 이정미 이종현 이종화 이준서 이중무 이찬혁 이창수 이춘기 이해옥 이현 이현호 이혜경 이희영 임광혁 임용태 장기준 장선호 장성민 장태동 장현풍 장혜선 장희창 전경철 전근향 전금희 전상훈 전은수 전인숙 전효복 정건희 정경남 정라영 정승희 정진후 정혜실 제명욱 조강영 조기봉 조미선 조병식 조성구 조솔 조장수 존버러 진민 차정원 채권석 천영미 최국태 최성귀 최성진 최수연 최양규 최영기 최원식 최유성 최재영 최재훈 최중철 최창근 최충웅 최호석 하늬 하록희 하모호모 하정 한신실 허관행 허인구 虛竹 현석강 현정해 홍성남 홍성주 홍유진 홍태완 황경원 황선숙 黃薔 황재삼 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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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01.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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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022 상반기까지 페이스북의 약자 글을 응원한 페친 1,989명 이름

ABC 가나다순

Albert MyeongJin Lee Andy Kwon Angie Eunjoo Lee Anuar Khan Bae Inseok Bae Ĵongtae Baek Kyum Kim Belle Époque Beomshik Shin Brandon Hwang Brian Lee Byeongsam Na Byoung-Ho Son Byunggyu Park Byungho Lee ByungSeok Lee Byung-sun Lee Caecilia Jung Ch Kang Chaeyoun Kim Chan Bae Lee Chan Soo Kim Chang Bong Lee Changhyi Lee Chan-Mun Jung Cheol-Yong Bang Chi Hyun Lee Cho Sa Meero Choi Dongwook Choi Kyoungsik ChongWoo Keith Kimb Chris Kim Chris Park Chris Suh Christina Cho Dae Hoon Kim Daehoon Lim DaeJoon Kang Daesuk Jo Daesun Choi Dalsoo Kim Dal-Yong Kim Daniel Bae Daniel Do Ahn Kweon Daniel Khang Daniella Kim Danny Im David JooShik Lee David Kim David Lee DC Kim Deok Hoon Kang Dong Jin Kim Kim Dong Soo Choung Dong Wook Yang Dong Yeoun Kim Dongho Kang Donghun Shin Donghyun Yoo Dong-Kee Kwak DonWook Choi Doo Hyun Merong Kim Ds Kang Edmond Kim EokSoo Kim Esther Lee Eugene Shim Eun Jang Cho Eun Won Seo Eunice Clara Lee Eunjeong Hong Eun-Jeung Lee Eunjoo Kim Eunju Choi Eunkyung Kim Eunsil Lumi Lee Eusub Byeon F.I. Zoo Francesco Nar Geumdong Lee Gi Hyun Lee Gidae Song Gil Mok Gil Seong JO GL Kim Googsoo Abang Grace Woogyoung Kim Greenbee Kim Gwanggil Jeon GwangSun Hwang Gye Jeong Kang Gyeboon Choi Gyeong Hwan Kim Gyu Yeong Kyeong Gyver Tc Haan Gil Yi Hachun Sung Hae Li Her Haeseok Anthony Lee Haesil Kim Han Mi Young Hangil Oh Hayun Yun Hazel Oh Hee Kyoung Lee Heeam Seo Hj Shin HoDong Kim Hoju Na Hokyun Cho Holly Jo Hong Junho Hong Mangi Hongig Ahn Hosung Mike Kim HoYoung Choi HunJae Chung Hyeon Ja Kim Hyeran Cha Hyun Bo Hyung Joon Won Hyung Man Park Hyung-chul Park Hyungkeun Yoon Hyungsoo Kim Hyun-Shik Son Hyun-su Lee Il Dong Oh Iljoong Yu Inho Ha Inpyo Hong Ivan Jin Jae-guk Jeon JaeHak Lee Jae-Hee Kim Jaeoh Woo Jaewon Byun Jaguar Kim JaiBong Kim James James James Kang Jasbo Jang Jasmine Amrita Leigh Jay H. Sean JB Kim Jean Yim Jeff Park Jeongeun Kim Jerome Kim Ji Young Jung JiHye Lee Jin Hee Kim Jin Kim Jingak Kim Jingoo Kang Jinhwan Kim Jini JiMyung Yoon Jinmo Kang Jinseok Kim Jin-Sik HA Jinwon Jang Jisu Yi Jiwon Yeom Kwong Jiyoung Kwon John JH Lee John Roh John Siwoo Lee Jong Cheol Lee Jong Hyun Moon Jong-Chol An Jongkil Son Jongs Hwang Jongsoo Park Jongwon Lee Joonghoon Jo Joonhan Yoon Joonyoung Sung Jooyoung Lee Joseph Jun Shik Cho Joseph Jung Joseph Lee Joseph Seo Joshua Shin Joy Yan Jt Park Judy Kim Jugwon Kabarett-kr Kim Julie Jeong Jun Han June Song Jung Ah Lee Jung Duk-young Jung Ok Kim Jung Yup Bang Junghoon Yoo Jungpil Lee Jungsook Chun Jungup Suh Junhee Lee Junkang Kim Justin Jeon Justin Jung Justin Park Juyoung Heo Kafka Han Kang Taeeun Kangho Lee Kate Oh Kay Song Keedae Kim Keemun Sung Kibong Hwang Kibum Park Kihwan Cheon Kim Andrea Kim Hooan Kim Jae Joon Kim Jinho Kim M. Cheol Kim Pil Rum Kim Yong Goo Kim Young Gu Kitae Kim Kite Han Ks Roh Kungju Cho Kunho Park Kunnyun Kim Kwang Su Hwang Kwanghoon Choi Kwangsik Choi Kwonchun Suh Kyeongho Yi Kyong H. Ra KyoungRae Cho Kyu Won Lee Kyung Bo Yoon Kyung Chae Kyung Mi Kim Kyungdong Kim Kyungho Dean Kyungmi Bae Kyungsoon Lim Lainey Park Lee Gawon Lee Hyung Kon Lee Jongha Lee Woosang Lee Yong Jhoon Leem Un-Soo Lion Kim Liy Sur MasakiKun Kim Mee-young Cherry Miae Na Mihee Kim Mike Lee MiKyung Kim Mimi Cho Mina Ri Mincheol Tak Minjeong Kee Minseon Ahn Minsoo Ko Mirang Choi MJ Richard Lee Mongspo Park Moon Jung Ok Mul Kyeol Kim Muse Whanni Myung Hee Yoon Myungwon Lee Na-haeng Kim Nakjibibim RohKim Namjoo Woo Nam-Seok Kim Namson Kang Narmi Lee NiCo Kwon O Se Eun Oh Hyun Sook Oh Ulpyo Yul Ohbong Kwon Okjin Park Ook Jeong Osean Lee Ostin Kwak Paris Ienne Park Hoju Park Myoungcheon Park SeongKeun Park Seunghun Park Ssam Regina Seoul Barcelona Ri Mi Rose Song Rosemary Oh Saebyeok Oh Salad Kim Samantha Hwang Samuel Kim Hyung Kyun Sang Soo Ahn Sanggeun Lee Sanghoon Lee Sangkoog Kim SangLae Yi Sangmin Royce Lee Sang-Mok Lee Santosh Chaulagain Sara Kim Scipio Nasica Sean Sewook Seo Sean Song Sebeom Lee Seho Oh Sekyu Park Seok-ju Cho Seol Hee Seon Kim Seong Yoon Shin Seongchae Ha SeongCheol Yoon Seongmin Kwon Seonmin Ahn Seung Hee Jeon Seung Hyun Seung Park Seungeun Lee Seungju Choi Seungwook Lee Sewoong Song Shei-heon Kim Shiwhang Kang Si Chang Simon HG Lee Sisyphus Da Corinth SJ Hong Sj Park Sla Kim Song Changhoon Soo Il Hyun Soo Jung Soo Kim Soo Yi Soo-hyun Lee Soomi Kweon Soon Ae Choi SoonGil Choi Sophia Park Souya Kim Ssam Ssam Stephen Lee Steve Min Steve Suh Stuart Choi Su Viny Suhui Kwon Sukho Kim Suk-Kyoung Hong Sun Hong Kim Sun Joo Kim Sun Kim Sung June Bae Sung Min Yoon Sungho Yoon Sunghwan Lim Sungyong Lee Sun-joo Kim Sunwoo Nam Sunyoung Lee Suvir Hong Tae-eui Jung Taesuh Park Tai Jun Park Timothy Kwon Ette Tom Wang Ty Li Wan Seop Kim Wanda Bunnylee Won Ik Lee Won James Won Woo Tae Wonjun Song Woo Chon Kwak Woochan Lee Wook Kim Wookje Sung Wookyu Kim Woong Stephen Chung Yeonghwa Lee Yeongjae Cheon Yewon Sofia Choi Yi Haakrho Yimoon Choi YJ Yi Yong Han Lee Yong Pil Yoo Yong Su Yu Yongchan Cho YongGi Kang Yong-Hoon Seo Yongjin Park Yongshi Jung Yoo Jung Ahn Youn Shial Choi Young Choi Young Hee Kim Young Jin Kim Young KO Young Kwon Young Mi KO Young Ok Park Young-Eun Ban YoungGeun Park Youngho Youn Youngsook Kim Youngwoo Lee Yuik Kim Yuri Lee Zino Heo 가희 감정규 강길섭 강길원 강동호 강동훈 강병철 강병훈 강신진 강신형 강윤식 강윤택 강은숙 강점석 강정규 강정희 강제윤 강종서 강지연 강창훈 강치권 강태구 강태윤 강태훈 강현만 강현석 강현숙 강현주 강효백 강희중 거부기 계승범 고기복 고낙규 고미숙 고벽 고석배 고성우 고성주 고수석 고순석 고승혁 고영상 고영옥 고재곤 고정석 공관 공영현 공영환 곽대규 곽대종 곽부영 곽선복 곽성종 곽순근 곽창신 구본상 구본수 구본영 구본진 구봉조 구익환 구정은 권계홍 권구백 권기훈 권미정 권민정 권봉수 권삼대 권수미 권수정 권재복 권찬규 권치영 권혜경 권혜반 금민경 금성경 긍고니 기영식 기훈 길래현 김갑곤 김갑수 김거성 김격태 김경민 김경숙 김경욱 김경표 김경환 김관철 김관형 김광배 김광윤 김국현 김권승 김권식 김귀상 김귀용 김귀자 김규호 김금옥 김기열 김기영 김기웅 김기재 김기정 김기호 김기홍 김김동욱 김김태식 김나영 김나현 김낙산 김남국 김남기 김남일 김남형 김대석 김대식 김대중 김대천 김대현 김덕수 김도식 김도연 김도영 김도훈 김동규 김동북 김동수 김동완 김동택 김동환 김동훈 김두호 김득식 김디모데 김래영 김래환 김말순 김명식 김명실 김명중 金明鎭 김명호 김명환 김무영 김문배 김미경 김미송 김미숙 김미옥 김민성 김민연 김민재 김민주 김범희 김병관 김병국 김병돈 김병선 김병수 김병철 김병탁 김병화 김병희 김보임 김보현 김복근 김봉유 김봉철 김봉호 김삼수 김삼종 김상명 김상순 김상옥 김상재 김상준 김상철 김상태 김석빈 김석환 김선관 김선근 김선녀 김선민 김선수 김선원 김선진 김선희 김설이 김성곤 김성규 김성균 김성기 김성묵 김성수 김성식 김성주 김성준 김성진 김성훈 김성희 김수덕 김수현 김수홍 김순구 김순식 김순주 김스티브 김승찬 김승태 김승택 김승환 김시근 김시무 김시영 김아란 김애란 김양석 김양옥 김양우 김어용 김엘라 김연석 김영남 김영란 김영미 김영석 김영선 김영숙 김영식 김영신 김영연 김영욱 김영철 김영태 김영학 김영해 김영호 김영환 김용갑 김용근 김용덕 김용만 김용범 김용순 김용식 김용엽 김용원 김용인 김용표 김용현 김용환 김우진 김욱중 김욱환 김운영 김원 김원근 김원천 김원하 김월도 김유진 김윤상 김윤태 김은선 김은영 김을현 김의현 김이승현 김이훈 김인규 김인극 김일남 김일식 김자곤 김장현 김재상 김재석 김재섭 김재영 김재유 김재은 김재찬 김재필 김재훈 김전암 김정기 김정대 김정범 김정보 김정수 김정숙 김정식 김정애 김정원 김정한 김정헌 김정환 김종국 김종권 김종근 김종삼 김종성 김종우 김종원 김종진 김종채 김종헌 김종환 김주대 김주생 김주영 김주혁 김준봉 김준섭 김준엽 김준영 김중국 김지완 김지웅 김지현 김진 김진백 김진하 김진형 김진호 김진희 김차복 金昌 德 김창진 김창회 김천일 김청남 김충현 김치문 김칠수 김칠현 김태복 김태봉 김태성 김태수 김태우 김태은 김태준 김태형 김태호 김평호 김필수 김하나 김하영 김학규 김학무 김학수 김해경 김해동 김해안 김행석 김향우 김헌용 김헌중 김현동 김현상 김현성 김현숙 김현용 김현욱 김현진 김현철 김형기 김형완 김형진 김형철 김혜경 김혜영 김호진 김홍익 김화식 김환생 김회신 김효곤 김효상 김효준 김훈 김흥순 김희숙 김희천 김희철 깜순이 나경록 나광국 나대웅 나동성 나병서 나윤주 나이등병 나주봉 나준연 나지혜 나해철 남규희 남기창 남김계산 남영실 남영우 남은주 남정훈 남창경 남현영 노강욱 노관범 노동식 노마드 노모뎀 노병호 노상호 노석균 노재명 노태현 니가노르 도야지 도전 도춘석 도호진 동동 라경운 라경춘 라미나 蘭撫 류경 류경렬 류근 류다현 류덕렬 류동수 류미옥 류석준 류선경 류영미 류운철 류원정 류은렬 류제봉 류주욱 류준열 류하늬 류호명 李凤宰 리향 림태주 마마품 마성기 마용철 맹석주 명노공 무의몽당 문두석 문복현 문봉철 문석준 문석진 문선종 문성식 문성춘 문성훈 문영제 문원숙 문원재 문의선 문지나 문진오 문태인 문형태 문환구 문희태 미님 민경국 민병기 민병수 민병창 민성진 민영기 민영록 박강연 박경석 박경운 박경철 박경현 박경호 박계순 박광일 박교식 박근식 박근조 박근태 박기완 박기윤 박기홍 박낙순 박노봉 박노육 박대연 박대용 박동희 박명규 박문진 박미순 박미애 박미진 박민관 박민규 박민수 박범각 박병구 박병상 박상수 박상언 박상용 박상운 박상익 박상조 박상준 박상칠 박상희 박선화 박선후 박성만 박성민 박성범 박성식 박성진 박성호 박세라 박소순 박송자 박수정 박슬기 박승용 박승진 박승희 박시철 박시후 박양희 박영길 박영미 박영산 박영삼 박영수 박영은 박영철 박영호 박외병 박용찬 박용화 박우림 박우행 박웅철 박윤산 박인석 박인혁 박인환 박재년 박재민 박재붕 박재중 박정근 박정만 박정석 박정현 박정희 박종관 박종균 박종극 박종업 박종호 박주석 박주하 박주화 박주희 박준서 박준우 박준형 박중협 박지훈 박진솔 박진태 박찬호 박철은 박철현 박춘기 박춘희 박출 박충구 박충식 박태웅 박한규 박해성 박해용 박헌중 박현석 박현수 박현숙 박형래 박혜선 박호규 박홍건 박홍서 박홍순 박효성 박효순 박희경 반동현 반호영 방미진 방태복 배경준 배근석 배금숙 배두성 배명훈 배병두 배병호 배성일 배순희 배윤기 배인현 배정우 배정홍 배창섭 배형호 배효수 백도경 백미영 백상욱 백세인 백승훈 백영기 백영인 백오영미 백재호 백정원 백진솔 백진옥 백형근 백호성 변녹진 변상동 변승만 비지혜 빅초이 사인사인 새드피터 새벽 徐基培 서나리 서도연 서동호 서범용 서병순 서상봉 서수영 서승연 서영환 서용길 서원종 서유선 서임택 서정훈 서진희 서천석 서한겨레 석예원 석종훈 석진기 석하유 선계복 선미라 선유진 선재성 선재원 선형수 성근제 성기순 성낙찬 성성적적 성승제 성용강 성유현 성인경 성인자 성철 소신남 손순애 손양익 손양현 손재성 손제희 손종수 손종재 손채익 송 승식 송경상 송경숙 송대정 송리노 송명수 송범 송봉선 송분선 송수인 송승훈 송영문 송영선 송영옥 송요훈 송용철 송원석 송은규 송일준 송장섭 송준호 송창록 송창욱 송치현 송희태 수정아빠 시정민 신동우 신동은 신동진 신동철 신동환 신동휘 신두환 신명철 신박진영 신상모 신상민 신상진 신상철 신성기 신성향 신유경 신윤철 신은희 신재근 신재환 신정은 신정희 신종국 신주영 신창호 신하늘 신현란 신현용 신희중 심광섭 심동영 심정섭 심종열 심지언 심흥근 심희옥 심희정 안경열 안경엽 안경읍 안국진 안균섭 안달화 안민웅 안병수 안병조 안병학 안선희 안성혁 안성호 안승일 안승준 안양금 안영신 안우곤 안은숙 안재금 안재현 안정수 안종철 안준원 안준호 안차수 안찬숙 안창민 안창영 안태극 안태성 안한용 안해근 안홍섭 안화미 알비노 양경숙 양기준 양배근 양석열 양승필 양영철 양우석 양윤석 양익수 양재원 양정모 양지운 양진철 양혜원 양화평 양효식 엄경희 엄광호 엄승호 엄태준 여병규 여종범 연담 염라 염만식 염무웅 염상훈 염현섭 염호정 영균김 예제하 오경섭 오경환 오국환 오문자 오민정 오병인 오세일 오수석 오승필 오아영 오어선장 오영숙 오영주 오영택 오재헌 오정규 오정애 오정호 오준학 왕초 용수빈 우상호 우신 우원우 우종열 우형구 원동욱 원수연 원유미 원준식 위선희 윈디박 유기흥 유림 유명성 유명주 유문승 유미자 유민석 유방상 유삼형 유선숙 유성훈 유숙 유승옥 유승진 유승현 유연택 유영국 유영대 유영모 유영미 유영성 유용석 유은수 유은희 유일상 유재의 유재풍 유재호 유종오 유준 유호정 유환호 유훈열 유희성 육윤수 육재윤 육현 윤건희 윤관명 윤규식 윤남주 윤성집 윤소연 윤양현 윤요한 윤용운 윤우영 윤윤회숙 윤정인 윤종기 윤종우 윤지영 윤지용 윤창석 윤창원 윤철면 윤태수 윤태흠 윤혜영 윤후의 윤희두 은경민 은규호 은하수 은행나무 이강우 이강택 이개터리 이건웅 이경래 이경엽 이경은 이경재 이경주 이경직 이경진 이경찬 이경혁 이경희 이계영 이광구 이광호 이광휘 이국주 이권창우 이규용 이근덕 이근윤 이근학 이글라라 이금동 이금선 이금옥 이기광 이기묘 이기섭 이기연 이기홍 이길재 이나윤 이남기 이남수 이냐시오 이달석 이대원 이동석 이동수 이동준 이동철 이동환 이동훈 이마로 이만교 이면호 이명균 이명선 이명수 이명재 이명준 이명훈 이문곤 이문식 이문희 이미오 이미혜 이미화 이민주 이민혁 이민화 이병열 이병옥 이병택 이봉민 이봉원 이부자 이상곤 이상국 이상림 이상무 이상암 이상열 이상옥 이상용 이상윤 이상은 이상재 이상주 이상철 이상헌 이상혁 이상호 이상훈 이석근 이선재 이선화 이성목 이성수 이성열 이성웅 이성진 이성희 이세경 이세우 이세훈 이송재 이송학 이수경 이순애 이순영 이순혁 이승연 이승재 이승화 이승희 이애란 이양재 이연구 이연수 이연우 이연출 이영란 이영미 이영상 이영운 이영철 이영화 이영훈 이영희 이옥심 이용일 이용재 이우경 이우철 이욱현 이원우 이원환 이유정 이유진 이윤규 이윤아 이윤정 이은경 이은옥 이은재 이은종 이은창 이은희 이을균 이의진 이인선 이인수 이인철 이인형 이임평 이자민 이장표 이재갑 이재걸 이재관 이재숙 이재식 이재영 이재원 이재철 이재환 이재훈 이재흥 이정권 이정무 이정수 이정용 이정우 이정원 이정하 이정헌 이정환 이정훈 이정휘 이정희 이종락 이종민 이종상 이종오 이종원 이종희 이주연 이주용 이주행 이주현 이준석 이준일 이준호 이중표 이지수 이진수 이진이 이진호 이창기 이창영 이창원 이창호 이채운 이철민 이청호 이태직 이태호 이평구 이하나 이한별 이해자 이행 이향숙 이현근 이현기 이현수 이현승 이현우 이현주 이현철 이형구 이형규 이형열 이형탁 이혜숙 이호산 이홍찬 이화섭 이효주 이훈 이휘재 이흥균 이희숙 인유 인허당 일한 임건묵 임규환 임길택 임도형 임동욱 임동조 임미령 임미화 임병권 임상필 임선미 임성원 임승진 임왕택 임유진 임은주 임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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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12.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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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민주주의 ( 1956년 6월, C. L. R. 제임스 )

2015년 3월 옮긴이 김종철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

녹색평론 통권 제141호 C. L. R. 제임스

(Cyril Lionel Robert James, 1901―1989)

이 글은 원래 제임스가 동료들과 함께 펴내던 잡지 Corres―pondence 1956년 6월호에 발표되었다.

 

 

직접민주주의

그리스의 통치형태는 도시국가였다. 모든 그리스 도시는 독립국가였다. 가장 좋았을 때, 아테네 도시국가에서는 모든 시민들이 참여하는 민회가 평화와 전쟁과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그들은 외부세력이 파견한 사자(使者)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외부세력이 전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를 결정했다. 그들은 모든 심각한 세금문제를 처리하고, 전쟁 때에는 지휘를 맡을 장군들을 임명했다. 그들은 국가 행정을 조직하고, 관리들을 임명·통제했다.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민회는 바로 정부였다.

아마도 그리스 민주주의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추첨, 즉 제비뽑기를 통해서 행정을 조직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스의 많은 공직자 대부분은, 사람들의 이름을 모자에 던져 넣고, 그 모자에서 무작위로 끄집어내어 지명하는 방법으로 선택되었다.

오늘날 평균적인 노동조합 관료나 노동당 의원들은, 무작위로 선출된 노동자 누구라도 자신들이 행하고 있는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기절을 할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그리스 민주주의를 움직이던 대원칙이었다. 그리고 이런 형태의 정부 밑에서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명이 꽃을 피웠던 것이다.

근대 의회민주주의는 대표자들을 선거로 뽑고, 이 대표자들이 정부를 구성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민주주의가 출현하기 이전에 다양한 통치형태가 존재했고, 그중에는 대의제 정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들어서면서 그들은 대의제 정부를 거부했다. 그리스인들은 보통의 시민들이 정부의 업무를 실제적으로 수행할 능력이 없다는 생각을 거부했다. 모든 시민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민회가 모든 중요한 결정을 스스로 통제했을 뿐만 아니다. 그리스인들에게는 평등을 뜻하는 말, 즉 ‘이소노미아’는 민주주의와 같은 의미로 쓰였다. 그리스인들에게 이 두 낱말은 같은 뜻을 가진 것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을 ‘이디오테스’라고 불렀다(오늘날 ‘천치’라는 뜻을 가진 낱말, 즉 ‘idiot’는 거기서 유래했지만, 우리는 그 말을 그리스인들에 비해서 매우 좁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스인들은 공직자들을 제비뽑기로 선출했을 뿐만 아니라 그 공직자들의 임기도 제한했다. 한 시민이 한번 공직을 맡으면, 다시 그 공직을 맡지 않도록 배제되었다. 왜냐하면 그리스인들은 누구든지 돌아가면서 국가를 운영하는 방법, 즉 윤번제를 신봉했기 때문이다.

지식인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지식인들은 이러한 시스템을 혐오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일반시민이 아니라 모름지기 유능한 자에 의해 정부가 운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랜 세월 동안, 철학자들과 정치평론가들은 그리스인들이 진심으로 인간평등을 믿었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낀 나머지 이 민주주의를 비난하거나 혹은 직접민주주의는 오직 도시국가에만 어울릴 수 있다고 설명하려고 했다. 그들은 대규모의 근대적 사회들은 그러한 형태의 정부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근대적 사회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그 사회는 직접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통치되는 것이 그만큼 더 절실히 필요하다고 믿는다(물론 그 직접민주주의가 그리스의 것을 그대로 모방한 것일 필요는 없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갈수록 커지는 방대한 관료제를 피할 수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 민주주의의 헌정체제와 통치형태를 비록 짧게나마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선, 그리스 민주주의가 정의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살펴보자. 한동안 그리스 도시들은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특별한 유형의 행정관과 재판관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 중엽에 민주주의가 세력을 얻게 되었을 때, 사법제도는 전면적으로 재조직되기 시작했다. 민회의 중요한 회기 동안 필요한 인원은 6,000명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매년 연초에는 그들은 각각 500명으로 구성된 12개의 소집단을 제비뽑기로 선출했다. 이 500명이 재판을 다루고, 그들의 결정이 최종적인 것이었다. 그리스 민주주의에서는 행정관이나 재판관은 단지 법정 일을 돕는 서기의 역할만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들은 예비적 정보를 제공하고,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사회자로서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의 역할은 다만 형식적인 것일 뿐이었다. 당시의 시민 배심원들은 오늘날처럼 단지 사실에 대한 판단만을 내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법률 자체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렸다. 소송 당사자들은 스스로 변론을 했다. 물론 그들은 법률에 정통한 사람에게 변론 작성을 부탁할 수도 있었지만, 그 변론은 자신이 직접 읽었다. 그리스인들은 성문화된 법이건 아니건, 법을 크게 신봉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저 민주주의자들은 법의 논리를 신봉했을 뿐만 아니라 평등의 원칙을 무엇보다 신봉했다.

비전문가들

이러한 사법제도가 근대적 사법제도보다 열등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매우 용감한 사람일 것이다. 법률가들이 공중에게 벌금을 과하고, 재판은 법정에서 법정으로 이어지면서 한없이 계속되고, 중대한 문제들은 때때로 수백 년간의 판례, 수백 권의 법률서를 통해서 추적해야 할 길고 복잡한 법률과 규정들의 미로를 거쳐서 결론이 내려지는 괴물 같은 근대 사법제도와 비교해서 말이다. 러시아혁명 직후 아직 그것이 영웅적인 단계에 있었을 때, 볼셰비키들은 ‘인민법정’을 실험해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소심했다. 어쨌든 그 실험 중 어느 하나도 그리 오래 계속되지는 못했다. 그리스인들이 행한 방법의 핵심은 재판권을 전문가들에게 넘겨주지 않고, 다수의 평범한 시민들의 지성과 정의감에 맡겼다는 점에 있다.

조직 혹은 정부

우리는 아테네의 정부조직에는 어떠한 원시적인 요소가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 반대로, 그것은 어떠한 근대적 정치가, 법률가들의 조직으로도 능히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민주적 절차에 따른 기적적 현상이었다. 그리스인들은 모든 사람이 투표권을 가짐으로써 평등이 확립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민회는 500명으로 된 평의회를 임명하여 도시를 운영하고 민회의 결의사항들을 집행하도록 했다.

평의회도 평등의 원칙에 지배되었다. 도시는 10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졌고, 1년은 10개의 기간으로 나뉘어졌다. 도시의 각 구역에서 50명을 제비뽑기로 뽑아서 평의회에 참여하게 했다. 각 구역으로부터 온 평의원들의 임기는 1년의 10분의 1 기간 동안이었다. 그리하여 50명이 언제나 행정을 맡고 있었다. 어느 구역 출신 50명의 평의원들이 행정을 담당할 것인지 순서를 정하는 것은 제비뽑기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행정에 봉사하는 50명의 평의원들은 매일 의장을 선택했고, 이 선택도 제비뽑기로 이루어졌다. 그 의장이 집무하고 있는 날 민회가 열리면 그는 민회에서 사회를 보는 역할을 했다.

평의회에는 서기가 있었고, 그 서기는 투표로 뽑혔다. 그러나 그의 임기는 1년의 10분의 1 기간 동안이었다. 그리고 그는 (틀림없이 관료주의를 방지하기 위해서) 그 50명 중에서 선출되는 게 아니라 당장의 행정업무에서 제외되어 있는 나머지 450명의 평의원들 중에서 선출되었다.

한번 평의원으로 일한 사람은 재차 평의원으로 봉사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그리하여 누구든 봉사할 기회가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시스템이 갖는 큰 장점의 하나를 보게 된다. 여러 해가 지난 다음에는 실질적으로 모든 시민은 행정가의 일원이 될 기회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민회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대체로 정부 일에 익숙한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민회에 제출되는 안건들은 사전에 평의회가 준비하고 조직한 것들이어야만 했다.

결정이 내려지면, 그것들을 집행하는 것은 평의회에 맡겨졌다. 평의회는 모든 행정관들을 감독했고, 어떠한 사무든지 평범한 시민들이 수행하는 게 가능했다.

그리스 민주주의에서는 상근 공무원들은 극소수만 존재했다. 그리스인들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평범한 시민들로 된 특별위원회를 임명하는 방법을 선호했다. 이들 위원회는 각기 꼼꼼하게 스스로의 활동범위를 정하고 업무를 수행했다. 이러한 다양한 업무 영역들을 조정하는 일은 평의회의 소임이었다. 많은 특별위원회들은 정부의 집행업무 처리를 도왔다. 예를 들어, 10명의 멤버로 된 위원회가 해군 관련 업무를 돌보았고, 또 10명의 멤버로 구성된 다른 위원회는 임기 끝 무렵의 행정관에 대해 제기된 불만사항을 청취했다. 흥미로운 위원회의 하나는 종교의식의 수행에 관련된 문제를 처리하는 위원회였다. 그리스인들은 매우 종교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제들과 사원 관리자들은 선거에 의해서 뽑힌 일반시민들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주교나 대주교, 교황 등의 종교적 관료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위원회들 중 몇몇은 평의회에 의해 선출되었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제비뽑기로 뽑힌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온갖 측면에서 볼 때, 우리는 그리스인들이 식료잡화상, 양초제조업자, 목수, 선원, 재단사 등등 평범한 사람들의 능력을 비상하게 신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직업의 종사자이든, 교육 정도가 어떠하든, 평범한 시민들은 누구든 제비뽑기로 뽑혀 국가가 요구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난센스를 용납하지 않았다. 민회가 보기에 하찮거나 바보 같은 안건을 민회에 제출한 개인들은 엄격한 처벌을 받았다.

민주적 연극

그리스인들이 얼마나 민주주의와 평등을 신봉했느냐 하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그들의 축제와 연극이다. 그리스, 혹은 좀더 정확히는 아테네에서, 가장 큰 축제의 하나는 디오니소스 축제였다. 그 축제의 클라이맥스는 나흘에 걸쳐 해 뜰 때부터 저녁까지 계속된 연극 공연이었다. 주민 전체가 연극을 보러 나왔다. 관리들은 다양한 극작가들을 골라 서로 경쟁하게 하였다. 공연 날이면 그들의 극이 상연되었고, 우리가 아는 한, 상(賞)은 처음에는 일종의 인기투표, 즉 가장 많은 관중의 갈채를 받은 작품에 수여되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연극패들은 1년 내내 연습을 하는 게 보통이었고, 성공적인 비극작가들은 국가의 가장 위대한 시민으로 존경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동료시민들로부터 영예와 찬사를 얻었다. 그러나 연극을 관람하고 누가 상을 받아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1만 5천 내지 2만 명의 관중, 즉 일반시민들이었다.

나중에는 그 결정을 위해서 한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오늘날에는 그와 같은 위원회는 교수들, 성공적인 작가들, 비평가들로 구성될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위원회는 도시의 구역별로 제비뽑기로 선택된 일정 수의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이 한군데 모여서 다시 제비뽑기로 자기들 중에서 10명을 선정했다. 이 10명이 심사위원이 되어 공연이 끝날 때 제비뽑기로 수상작을 결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민주주의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태도를 충분히 드러내주지는 못한다.

위원회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심사위원들에게 압도적인 영향력을 끼쳤다는 증거가 있다. 그리스인들은 연극 경연장에서 마치 오늘날 축구나 야구장에서의 관중들처럼 행동했다. 그들은 격렬한 참가자들이었다. 그들은 발을 구르고 고함을 치고 싫거나 좋은 장면 앞에서 자신들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냈다. 심사위원들은 관객들의 의견이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지를 주의 깊게 관찰했다. 왜냐하면 당시의 법은 심사가 끝난 뒤 그 결정에 불만을 느낀 사람들은 심사위원들을 탄핵하도록 허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게 아테네 민주주의가 운영되는 방식이었다).

어쨌든 연극을 발명한 것은 그리스인들이었다. 그들 속에서 탄생한 세 사람의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에게 필적할 만한 극작가는 오늘날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또한 희극작가로서 아리스토파네스를 능가할 사람도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 그들은 상을 받으려면 관중을 즐겁게 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은,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있듯이, 이런 식의 결정에 극히 적대적이었다. 그러나 그리스의 대중은 아이스킬로스에게 13차례나 상을 주었다.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 그리고 나중에는 에우리피데스에게 수상의 영예를 되풀이해서 안겨준 것은 바로 그 평민들이었다. 플라톤이나 그의 철학자 친구들이 심사위원들이었다고 해도, 이보다 더 나은 결정을 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여기서 우리가 보는 것은 그리스인들이 일반시민들의 능력과 판단력을 얼마나 믿었던가 하는 것이다. 모든 개개 시민 속에는 그러한 능력이 있다고 그들은 믿었던 것이다.

노예제와 여성들

오늘날, 이러한 민주주의가 노예제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조롱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 중에는 급진파와 혁명가들도 있다. 실제로 그리스의 민주주의가 노예제에 근거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노예제를 이유로 그리스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노예들을 옹호하기보다는 실제로는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데 관심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아왔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그의 ‘가족’에 관한 저서에서 그리스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노예제를 분석하였고, 현대의 학자들은 대체로 엥겔스에게 동의하고 있다. 초기에, 그리스의 노예제는 그리스의 사회생활과 경제에서 큰 역할을 하지 않았다. 노예는 대부분 가사 노예였다. 나중에, 노예들의 수가 증가했고, 적어도 그 수는 시민들의 수만큼 되었다.

나중에, 노예제가 상업과 산업의 발달과 함께 크게 확대됨에 따라 노동이 천시되었다. 엥겔스는 이 엄청난 노예제의 성장과 그에 따른 노동의 천격화가 위대한 그리스 민주주의의 쇠퇴의 한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말해둘 필요가 있는 것이 있다. 즉, 민주주의가 한창이었을 때도 그리스에는 많은 노예들이 있었고, 그들은 시민권은 없었지만 보통의 그리스 시민처럼 일상을 영위했다는 점이다. 그것을 보여주는 증거는 많다. 가장 중요한 증거의 하나는 플라톤의 발언이다. 즉, 플라톤은 길을 가다가 자유시민(특히 자기와 같은 특출한 시민)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노예한테 포도(鋪道)에서 물러날 것을 명령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불평하고 있다. 불가능한 이유는 노예들의 옷차림이 일반시민의 복장과 흡사해서 누가 시민이고 누가 노예인지 구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플라톤은 그리스 민주주의를 지독히 혐오한 나머지 말들이나 당나귀들도 마치 자유를 허락받은 존재인 양 거리를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다고 불평을 했다. 급진적 민주주의가 끝나갈 무렵, 아테네의 최대 웅변가 데모스테네스는 노예를 대하는 행동규범을 강조했다. 그것은 노예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 시민 자신들을 위해서라고 그는 말했다. 즉, 인간이 다른 인간을 무례하게 대하는 것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광산에서 일하던 노예들의 상황은 끔찍한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아테네에서의 노예에 관한 규범은 일찍이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가장 계몽된 것이었다고 유능한 학자들은 이야기해왔다.

또한 아테네 민주주의가 번성했던 기간에 여성들의 지위가 별로 나쁘지 않았다고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이야기되었다. 물론 그 기간에도 여성들은 투표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우리는 그리스 민주주의에서 여성들은 아이들을 낳고, 남편을 위해서 가사에 전념하고 있던 존재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들어왔다. 하지만 몇몇 현대의 저술가들은 보다 면밀히 증거를 조사한 뒤에, 이 오래된 견해를 비판해왔다. 우리는 머잖아 세계가 그리스 민주주의 시대에 여성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좀더 균형 잡힌 견해를 갖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서구문화의 창시자

고대 그리스인들이 인간평등에 입각한 독특한 정부형태를 만들어내고 실천한 것 이외에 별로 이루어놓은 게 없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후세에 기억될 만한 업적을 성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들이 또한 서양세계의 지적 토대를 형성해놓았다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는 철학과 논리, 변증법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는 정치와 민주주의, 과두제, 헌법, 법률에 대해서 논한다. 우리는 웅변과 수사학과 윤리에 대해서 말한다. 우리는 연극에 대해서, 비극과 희극에 대해서 말한다. 또한 우리는 역사에 관해 이야기하고, 조각과 건축에 관해서 논한다. 이 모든 이야기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는 그리스인들이 발견하고 발달시켰던 토대 위에서 구축된 것들이다.

과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지적 및 정치적 영역에서 지금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과 관행과 절차 등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모두 고대 그리스인들이 발견하고 만들고, 분류하고, 분석한 것들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이러한 것만 만들거나 발견한 게 아니다. 조각이든 정치든, 철학, 예술, 문학 그리고 의학과 수학 등등 온갖 것을 발명·발견하고 발달시켰던 그들에게 필적할 만한 인간은 지금까지도 없다. 우리가 근대문명사를 쓴다고 할 때, 우리는 대여섯 명의 미국인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조금 더 후하게 접근한다면 열두어 명쯤 될 것이다. 그만한 수효의 영국인을 찾아내는 것도 역시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서양문명사를 쓴다면, 적어도 60명 내지 80명의 그리스인을 언급하지 않으면 안된다.

예를 들어, 서사시라면 호메로스. 드라마는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페데스. 희극은 아리스토파네스. 서정시는 핀다로스와 사포. 정치가는 솔론, 테미스토클레스 그리고 페리클레스. 조각은 올림피아 경기장을 장식했던 거장들과 페이디아스. 웅변술은 데모스테네스. 역사는 투키디데스와 헤로도토스. 철학은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과학과 수학에는 피타고라스와 아르키메데스. 의학은 히포크라테스 등등.

이 목록은 오직 가장 잘 알려진 이름들 중의 일부에 불과하다. 여기서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은, 그리고 그리스에 대한 우리의 관점의 기초가 되어 마땅한 것은, 이들 대부분이 그리스 민주주의가 번성하던 바로 그 시절에 살았고, 자신들의 최선의 업적을 이룩했다는 사실이다.

근대와의 비교

이것은 아테네 민주주의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이다. 모든 시민이 다른 시민들과 함께 평등하게 정부를 운영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했던 바로 그때, 다른 말로 하면, 평등이 극단적일 정도로 실현되었던 바로 그때, 아테네는 세계역사상 가장 다양하고 포괄적이며 뛰어난 천재들을 산출했던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인구는 1억 5,500만 명이다(이 글 집필 당시 ― 역주). 다시 말해서 고대 아테네 인구의 1,500배이다. 경제적 부(富)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인구 2만으로 구성된 어떠한 하찮은 현대 도시라 할지라도 아테네 같은 도시가 그 전성시대에 누리던 것보다 100배 이상의 경제적 자원을 갖고 있다. 더욱이 그 대부분의 생존기간 동안, 아테네의 전 주민들은 영국의 축구장 12개 정도의 면적에서 갇혀 지냈다. 이로써 우리는 고대 그리스 일반이 아니라 아테네 민주주의가 이룩한 믿을 수 없는 성취가 어떤 것이었는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세계사적인 성취를 이룩한 것은 바로 그리스 민주주의였고, 그것은 민주주의 없이는 창조될 수 없었다.

그리스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문명의 토대를 구축했을 때 위대한 예술가, 철학자와 정치가들을 산출했던 것만은 아니다. 그리스인들은 서구문명을 방어하기 위한 몇몇 가장 치열한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고 이겼다. 마라톤·플러티어·살라미스 전투에서 수천 명의 그리스인은 십만 대군을 거느린 동방 페르시아의 전제군주에 맞서서 민주주의와 결사의 자유 등을 지키기 위해서 싸웠다. 기원전 5세기의 이 전투에서 그리스를 파괴하고자 했던 동방의 야만주의는 20 대 1의 수적 열세를 무릅쓰고 싸운 그리스인들에 의해 패배를 당하고 쫓겨났다. 동방의 폭군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그리스 국가들을 무너뜨리고자 했던 것이다.

아테네 민주주의자 ― 어떤 사람들이었나?

이것은 늘 중요한 질문이었지만, 그러나 우리가 도달한 사회 단계에서 이것은 근원적인 질문이 되었다. 즉, 그리스의 민주주의자들은 대체 어떤 인간들이었는가? 맑스는 미래의 인간유형, 즉 사회주의사회의 인간은 어떤 인간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다. 맑스에 의하면 그는 “20 종류나 되는 다양한 일을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는 충분히 발달한 개인으로서, 어떤 것이라도 생산할 준비가 되어 있고, 각기 다른 사회적 기능들을 감당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생래적이거나 후천적으로 획득한 능력을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 민주주의의 가장 위대한 정치가 중의 한 사람인 페리클레스가 어떻게 그리스 시민을 묘사했는지를 보자.

모든 것을 감안할 때, 나는 우리의 도시 자체가 그리스인들에 교육의 장(場)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내 생각에, 우리의 시민 개개인은 인생의 모든 국면에서 스스로의 주인임을 입증해 보여줄 수 있습니다. 게다가 비상한 다재다능함을 가지고 극히 품위 있게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맑스나 민주주의와 평등사회에 관해서 말해온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미래의 사건으로 묘사해야 했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에게 그것은 도달하고자 하는 갈망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정사실이었다. 페리클레스의 이 발언은 민주주의에 관한 가장 위대한 그리스적 발언, 즉 전쟁에서 전사한 아테네인들을 위한 장송(葬送)연설에 들어 있었다.

그리스 민주주의자들이 이와 같은 예외적인 힘과 다양한 재능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근대 민주주의에 비해 두 가지 장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민주주의의 최성기에 그리스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개인주의를 몰랐다는 점이다. 그리스인들에게는 도시국가를 떠난 개인이란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도시국가는 또한 자유로운 개인들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스인들은 도시국가와 맞선 개인으로서의 자신이나 타인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은 민주주의가 쇠퇴한 뒤에 가능해졌다. 그리스인에게 엄청난 힘과 자유를 부여한 것은 이와 같이 개인과 도시국가 사이의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인 완전한 균형이었다.

페리클레스는 정치뿐만 아니라 사적 생활에서도 개인이 원하는 대로 행하고 생각할 수 있는 자유야말로 그리스인들의 활력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같은 연설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정치적 삶이 자유롭고 열려진 것이듯이 우리들 상호간의 관계 속에서 영위되는 우리의 일상생활도 자유롭고 열려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이 자기 나름으로 생을 즐기고 있다면 굳이 국가 속으로 끌어들이지 않고, 또 우리는 그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나쁜 시선으로 그를 대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적 생활에서 자유롭고 관용적입니다만, 그러나 공적 생활에서는 우리는 법을 지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가 법을 깊이 존중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권력을 맡긴 사람들에게 복종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법률 그 자체에 복종합니다. 특히 억눌리는 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에 대해서, 그리고 위반하면 큰 수치가 된다고 여겨지고 있는 법률에 대해서는 더 그렇습니다.

인간적인 ‘신(神)들’

이 간단한 말들을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기 위해서는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미국은 현대 국가들 중에서도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다수파가 자신들에게 순응하지 않는 소수파를 위협하거나 못살게 구는 나라로 악명이 높다. 영국에서는 이른바 ‘예절 바름’이라는 개념이 미국보다는 덜 야만적이지만 그래도 그에 못지않은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리스인들이라면 그러한 차별을 야만인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스인들이 페르시아를 그토록 혐오한 이유의 하나는, 페르시아에서는 사람들이 1인의 군주 앞에서 고개를 숙이거나 자신을 낮춰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은 이것을 ‘굴종’이라고 불렀고, 그것은 오직 야만인들에게만 어울리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리스인들은 전쟁이 한창인 때에도 극장으로 가서(그것은 국가 극장이었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통렬한 반전극(反戰劇)에 갈채를 보냈다. 한번은 아테네의 지배자가 외국 귀빈들을 대동하고 공식적인 자격으로 연극을 보러 왔을 때, 아리스토파네스는 연극 속에서 그 지배자를 무자비하게 조롱했고, 그 때문에 그는 기소되었지만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리스 민주주의자가 가진 또하나의 장점은 그에게는 종교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스의 종교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매우 우스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지하게 연구를 해보면 그리스인들의 종교는 그들의 다른 업적들과 마찬가지로 천재성의 소산임을 알 수 있다. 종교란 우주와 그 속에서의 인간의 위치에 대한 총체적인 개념이다. 이것이 없다면 개인이나 인간집단은 황야를 헤매는 인간들처럼 된다. 그리고 한 인간집단의 종교적 개념은 대체로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그들 자신의 반응을 나타내고 그것을 발전시킨 것이다. 현대인은 그가 살고 있는 혼돈의 세계를 어떻게 가늠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데, 그것은 그에게 종교가 없는 이유이다.

그리스 도시국가는 온갖 관계가 이해하기 쉽고 간단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우주 전체와 그 속에서의 인간의 위치를 극히 단순한 개념으로 생각했고, 그것은 불합리하게 보이는 것들로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은 매우 합리적인 것이었다. 그리스의 신(神)들은 기본적으로 보다 우월한 종류의 인간들이었다. 그리스인들은 그 신들을 올림포스 산 꼭대기에 위치시킨 다음에 그 높은 곳에서 우월성을 행사하도록 했다. 그러나 어떠한 시민이라도 그의 힘이 지나치게 강해져서 마치 신(神)처럼 군림할 우려가 있을 때에는 아테네 민주주의는 그를 매우 쉽게 처리했다. 그들은 일종의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반대표가 많으면 그는 10년 동안 국외로 추방되었다. 그러나 그가 돌아올 때에는 자신의 재산을 도로 찾는 게 가능했다. 여하튼 그리스에서 신(神)들은 올림포스에만 머물도록 되어 있었다.

모든 종교에는 커다란 신비와 심리적 및 전통적 연상들이 얽혀 있어서 그것들을 풀어 헤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리스인들의 종교에도 이러한 신비적 요소들이 분명히 개입돼 있었지만,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그리스인을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하여 국가와의 관계에 있어서나, 자신이 다룰 수 있는 차원을 초월한 문제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나, 그리스인은 자신과 동료시민들이 처해 있는 위치를 후세의 어떤 사회에서보다 더 탁월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잘 작동하는 정치

그리스 민주주의 정치의 큰 강점은 다수 시민들이 정치활동에 참여하는 데 대한 대가를 지불받았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정치는 한가로운 시간에 하는 여가활동도 아니고, 특별한 보수를 받고 하는 전문가들의 활동도 아니었다. 사회주의사회에서, 예를 들어, 노동자들의 조직과 국가의 정치는 그리스인들이 생각했듯이 하루하루 생활의 중요하고도 불가결한 일부로 간주될 것임이 틀림없다. 그와 같은 간단한 변화만으로 오늘날의 정치는 하룻밤 사이에 혁명적으로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 민주주의 시스템의 큰 약점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가난한 시민들이 정치 이외에 별로 하는 일이 없었다는 점이다. 오늘날 사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면서 생존하고 있다. 그리스의 가난한 시민들은, 그리고 로마의 빈자들은 더 많이, 사회의 희생 위에 생존을 영위했다. 마침내 이것은 그리스 민주주의 시스템의 쇠퇴를 초래한 요인의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그리스 민주주의는 거의 200년이나 계속되었다. 프랑스와 영국의 제국 시스템은 별로 오래 계속되지 못했다. 그리고 세계문명을 주도하는 미국의 역할은 그 역할이 제대로 시작도 되기 전부터 치명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리스인들은 매우 ‘세련된’ 사람들

우리가 여기서 그리스 민주주의에 대해서 일반적인 설명 이상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스인들의 다양한 생활 국면들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는 빈틈들이 존재한다. 학자들이 여러 세기에 걸쳐 참을성을 가지고 주의 깊게 연구를 해온 것들도 실제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고, 그렇게 해석되고 있다. 의견의 차이가 있을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 민주주의에 적대적인 사람들도 늘 있어왔고, 지금도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여기서 취하고 있는 입장은 가장 건전한 학문적 권위에 근거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 즉 자유의 창조적 힘과 보통사람들의 자치능력에 대한 우리 자신의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가 고대 그리스인들의 그러한 믿음을 공유하지 않는 한, 우리는 그들이 이룩한 문명을 이해할 수 없다.

역사는 살아있는 생명이다. 그것은 사실들의 집합체가 아니다. 우리는 오늘날 대의제 정부와 의회민주주주의가 시대의 긴급한 문제들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결여하고 있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그런 우리는, 예를 들어, 대의제 정부와 의회민주주의가 튼튼하게 정립된 것으로 보였던 1900년경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했던 방식으로 지금 그리스 민주주의를 연구하고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제비뽑기와 윤번제에 의해 모든 시민이 번갈아 가며 국가통치 업무를 맡았던 시스템을 생각해보자. 그리스인들은, 혹은 좀더 엄밀히 말해서, 아테네인들(물론 많은 그리스 도시들이 아테네를 따랐지만)은 어떤 직책에는 특별히 자격이 있는 사람을 선거로 뽑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군대나 함대의 지휘자들은 특별히 선출되었고, 그들이 선출된 것은 그들의 군사적 지식과 능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자칫하면 오해가 있을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늘 일반적인 그리스의 민주적 관행에 제약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일반시민들이 ‘전제(專制)’에 대하여 너무나 예민하게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의 장군들은 오늘날의 관료제 혹은 대의제 정부 밑에서 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지위를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사실이다.

페리클레스의 울음

그러나 민주주의를 고도로 세련되게 실천했던 그리스인들은, 예컨대 장군으로 임명된 사람들을 끊임없이 바꾸지는 않았다. 페리클레스는 거의 30년간 장군으로서 아테네를 지배했다. 그러나 지배는 했지만, 그는 독재자가 아니었다. 그는 끊임없이 재선출되었다. 한번은 그가 법정에 서서 재판을 받은 일도 있다. 그 재판에서 이겼지만 말이다. 또다른 경우에는, 그와 같이 살고 있던 여성 아스파시아가 페리클레스의 정적(政敵)들에 의해 법정으로 끌려 나온 적도 있었다. 페리클레스는 그의 신중함과 평정한 태도로 유명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아스파시아가 너무나 큰 압박을 받아 고통을 겪는 것을 보고 그는 참을성을 잃고 큰 소리로 울었다. 이 광경에 배심원들은 너무 놀랐고, 그리하여 그것은 아스파시아의 방면(放免)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리는 현대의 지배자들에게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는가? 민주국가이든 아니든 말이다.

그리스인들이 페리클레스를 해마다 선거로 뽑은 것은 그가 정직하고 유능한 인간임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에 그들이 페리클레스에게 불만을 느끼게 되면 언제라도 그들이 그를 내던져 버릴 것이라는 것은 페리클레스 자신도, 그리스 시민들도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이 전성기의 그리스 민주주의의 지배적인 정서였다.

그 민주주의는 하룻밤 새 정립된 게 아니었다. 초기 그리스 도시들은 이런 식으로 통치되지 않았다. 토지에 기반을 둔 귀족들이 경제를 지배하고, 정부의 모든 중요한 직책을 차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부유하고 강력한 힘을 가진 귀족들이 몇 세기 동안이나 아레오파고스라는 통치기구를 통제했다. 아레오파고스는 나중에 평의회로 이전되는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법정의 재판관들도 귀족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현대의 지배자들이나 판사들처럼 엄청난 힘을 가지고 ‘위로부터의’ 권력을 행사했다. 그리스 민주주의도 일찍이 전문가와 관료에 의해 통제되는 정부를 경험했던 것이다.

그리스인들이 직면한 문제들이 너무나 단순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오늘날처럼 복잡한 문명사회에서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단순한 해결책을 발견하고 실천한 것은 아니다. 그런 식의 주장은 오늘날 직접민주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쉽게 하는 말이고, 심지어 몇몇 학식 있는 당대의 그리스 학자들도 쉽게 입에 올린 말이다. 그러나 그 논리는 철저히 잘못된 것이다. 그 증거는 당대의 가장 위대한 지식인들, 즉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모두 그 민주주의에 대해 통렬히 적대했다는 사실에 있다. 그들에게는 평민에 의한 정부는 원칙적으로 오류였다. 그래서 그들은 그 정부를 끊임없이 공격했다. 뿐만 아니라, 플라톤은 자신의 긴 생애의 대부분을 그리스 민주주의보다 우월한 사회와 통치형태를 만들어내는 방법과 수단을 토의하고 고안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는 데 사용했다. 그런데 플라톤이 이러한 것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민주주의 덕분이었던 것이다.

플라톤이 생각하고, 토의하고, 자유로이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민주주의사회 속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플라톤이 추구했던 완전한 사회에 대한 아이디어들은 오로지 그리스 민주주의 그 자체가 끊임없이 실제적으로 실현 가능한 최선의 사회를 향해서 자기진화를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플라톤과 그의 서클이 개발한 이론과 아이디어들은 사회문제들을 이론적으로 천착해온 모든 사람들에게 변함없이 소중한 것이 되어왔다. 즉, 그들의 작업은 서양문명의 공통 유산의 일부가 되어왔다.

그러나 우리가 이 모든 게 과거의 역사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큰 잘못이다. 플라톤의 가장 유명한 책 《국가》는 민주주의를 대신할 하나의 이상적인 사회를 묘사한 것이지만, 그것은 엘리트에 의해 통치되는 완벽한 전체주의 국가 모델이다. 그리고 더 나쁜 것은, 플라톤이 오늘날까지 지식인들 사이에서 계속되고 있는 관행, 즉 평범한 사람들이 실제로 나라를 통치할 수 있다는 생각을 거부하는 모든 정치적 사고와 실천의 출발점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플라톤은 마지막에는 급진적 민주주의가 아테네를 위한 최선의 통치형태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지식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들은 관료적 정부를 지지하거나 혹은 때로는 심지어 전체주의적 통치형태를 지지한다. 여러 세기를 통해서 지식인들이 플라톤과 그의 사유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물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러한 명분은 전혀 없다. 우리 모두가 무엇보다 배워야 할 것은 그리스인들이 인간평등에 대한 그들 자신의 관념을 구체적으로 자신들의 삶에 구현했던 방식이다. 그리스인들은 철학자들의 책을 읽고 민주주의에 도달한 것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오로지 몇 세대에 걸친 투쟁을 거쳐서 그것을 쟁취했던 것이다.

민주주의를 어떻게 쟁취했는가

기원전 650년에서 600년 사이 어디쯤에서 법률이 제정되었을 때 그리스 민주주의의 최초의 단계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이 무엇에 의해 통치되고 있는지 모든 사람이 알도록 법률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믿고, 그것을 위해서 열심히 싸웠다.

그러나 그것은 우연적인 사태가 아니었다. 늘 그렇듯이, 그리스의 정치상황을 변화시킨 것은 사회구조의 변화였다. 상업과 산업 그리고 화폐의 사용이 귀족의 특권을 깨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고, 향후 다년간 상인과 교역 계층의 성장, 장인(匠人) 계층의 증가, 소규모 공장에서의 노동자와 선원들의 증가에 따라 사회적 격차의 해소, 평등화가 크게 진전되었다. 그리스사회의 이러한 변화와 함께, 상인들은 우리가 최근 수세기 동안 유럽 역사에서 그리고 동양 국가들의 역사에서 보아온 것과 같은 방식으로 권력을 요구했다.

솔론은 최초로 다소간 민주적인 헌법을 만든 정치가였고, 그 때문에 그의 이름은 오늘날까지 정치적 현자(賢者)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는 그의 이름이 신문의 헤드라인에 곧잘 등장하는 것을 보지만, 그러나 그 기사를 작성한 사람은 솔론이 실제로 행한 것에 대해서는 별로 공감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확언할 수 있다. 그러나 솔론의 이름이 오랫동안 정치적 예지의 상징으로 지속되어왔다는 사실은 솔론 이후의 인간사회에 얼마나 심대한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시사하고 있다. 기원전 6세기가 끝나기 직전 몇년 사이에 솔론의 헌법 속에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솔론의 개혁

도시국가의 시민들은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인근에 살고 있는 농민들도 포함했다. 솔론은 상인들과 도시 주민 이외에 농민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화폐경제와 교역 및 산업의 성장은 농민들에게 무거운 부채를 안겨주었는데, 솔론은 그 부채를 말소시킴으로써 농민들이 고통스러운 부담에서 풀려나게 했다. 산업과 교역의 성장 그리고 오래된 농민경제의 해체는 솔론의 위대한 헌법이 만들어지는 사회적 조건을 형성해주었다. 그러니까 솔론의 헌법은 사회적 대격변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솔론이 헌법을 도입할 당시의 주변 세계의 상태가 어떠했는가 하면, 그 헌법이 제정되고 난 30년 뒤 성경에 언급돼 있는 왕 네브카드네자르(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한 바빌론의 폭군 ― 역주)가 죽었다. 이 사실은 그리스 민주주의의 위대함을 비웃는 자들 모두에게 줄 수 있는 대답이 될 것이다. 당시 그리스인들을 제외한 세계의 나머지 지역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를 일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솔론의 헌법은 위대한 역사적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지만, 그가 출범시킨 민주주의는 나중의 직접민주주의, 급진적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솔론 이후 적어도 한 세기 동안은 국가의 고위 직책들은 재산을 가진 자들에 의해 채워졌고, 재산을 소유한 자들이란 대체로 귀족 태생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솔론의 헌법은 18세기의 영국 헌법과 유사한 것이었다. 계층 간의 실제 관계는 아마도 군대에서 가장 잘 볼 수 있었다. 아테네와 같은 도시들에서는 건강한 신체를 가진 모든 주민이 전쟁에 나가서 싸우도록 소집되었다. 그러나 정치적 권력은 귀족의 손을 떠난 뒤에 수십 년 동안 스스로 갑주(甲胄)와 말들을 조달할 수 있는 사람들의 손에 장악되어 있었다.

노(櫓)잡이들의 파워

솔론이 죽은 뒤 90년쯤 되어서 아테네에는 또다른 큰 혁명이 일어났다. 그 혁명을 이끈 인물은 클레이스테네스라는 급진적인 귀족이었다. 클레이스테네스는 진정한 중산계급 민주주의를 구축했다. 서구 역사에서 보듯이 민주주의의 최초 단계는 흔히 헌법의 제정이다. 그 이후 헌법을 중산계급과 하층계급으로 확대시키는 단계가 온다. 그리스에서도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평민은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며, 그들은 민주적 권리를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지위로부터 배제되어 있었다. 평범한 시민, 보통의 노동자, 보통의 장인들은 나중에 그들이 갖게 되는 것과 같은 특권을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 그러한 그들이 어떻게 민주적 권리를 획득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은 매우 교훈적이다.

상업의 발달로 아테네는 처음에는 하나의 상업도시로, 그 다음에는 지중해와 그 주변 다른 지역들 사이에서 활발히 교역을 하는 도시로 탈바꿈하였다. 그러나 클레이스테네스에 의해 중산계급 민주주의가 건설된 지 몇년 후, 강대한 국가 페르시아로부터의 침략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기원전 490년에 마라톤 전투가 있었고, 기원전 480년에는 살라미스 전투 그리고 479년에는 모든 주민이 나가서 싸운 플러티어 전투가 있었다. 대부분의 전투는 바다에서 행해졌다. 그리하여 상업적으로 또 군사적으로 아테네는 해양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 무렵 선박은 노를 젓는 남자들의 힘으로 움직였다. 그 결과, 노잡이들은 커다란 사회세력이 되었다. 그리스인들은 늘 그리스가 페르시아라는 강대한 적에 맞서서 자신을 성공적으로 방어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주의 덕분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뒤에, 함대의 노잡이들은 민주주의의 첨병이 되었고, 그들은 민주주의가 밑바닥 계층까지 확대되도록 강제했다.

하층민과 피레우스

아테네의 항구는 지금도 그렇지만 피레우스였다. 거기서 대부분의 상선(商船)들의 선원과 해군과 많은 외국인들이 살고 있었다. 민회를 이끈 사람들은 때로는 급진적 귀족들, 나중에는 흔히 일반 장인들이었다. 그러나 피레우스의 하층민들이 민회의 주된 동력이었고, 그들은 종종 민주주의자 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이었다.

그들의 투쟁은 계속적으로 이루어졌다. 기원전 479년에 플러티어 전투가 일어났다. 사반세기 후, 또다른 혁명이 일어났고, 아직도 일부 권력을 유지하고 있던 귀족들로부터 급진적 민주주의자들에게로 권력이 명확히 넘어갔다. 5년 후, 아테네의 최하층민들이 권력을 획득하여 ‘아르콘’이라는 매우 높은 직위(아테네의 9명으로 구성된 집정관 ― 역주)에 선출되거나 임명되기에 이르렀다. 민중이 정치활동에 참여하도록 돈을 지불하기 시작한 것은 페리클레스였다. 458년부터 급진적 민주주의가 계속되었고, 기원전 338년에 이르러 그것은 붕괴했다.

계급투쟁

투쟁은 계속적이었다. 오래된 귀족계급과 일부 부유층은 민주적 헌정체제를 파괴하고 특권층에 의한 지배를 제도화하기 위한 시도를 계속했다. 그들은 일시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으나 궁극적으로는 번번이 패배를 당했다. 마지막에 민주주의가 패퇴한 것은 외국의 적에 의해서였지 내부로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다. 아테네 민주주의의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민회가 전권(全權)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어떠한 사회주의적인 교의(敎義)를 실행하려고 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자들은 부자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과하고 통제했으나, 동시에 그들은 주로 농민과 장인으로 된 아테네의 경제가 사회주의사회를 위한 경제적 기초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이해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이상주의자나 이론가 혹은 실험가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말짱한 정신을 가진 책임 있는 사람들이었고, 지금까지 정부를 실제적으로 운영하는 데 있어서 그들을 능가할 사람들이 없었다.

우리는 오늘의 노동자들에게 아테네의 위대한 민주주의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 이 글을 어떻게 끝맺어야 할까? 아테네 민주주의자들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 다 큰 것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선물은 민주주의에 대한 그들의 정열이라는 점을 현대사회에 상기시키는 일일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인들과 싸웠지만, 또한 그에 못지않은 결단력으로 도시국가 내부의 적들과도 싸웠다. 한번은 그들이 외국과 전쟁을 하느라고 열중해 있는 동안, 반민주주의자들이 특권계급 지배체제를 세우려고 기도했다. 아테네 민주주의자들은 두 적들, 즉 해외의 적과 국내의 적을 패퇴시켰다. 이 이중의 승리 이후에 민회는 다음과 같은 포고문을 발표했다.

아테네인의 맹서
만약 누구라도 아테네 민주주의를 전복하거나 민주주의가 무너진 뒤 여하한 관직을 차지하는 자는 아테네인들의 적이 될 것이다. 그를 죽이는 사람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을 것이며, 그의 재산은 몰수되어 아테나(아테네를 수호하는 여신(女神) ― 역주)에게 바치는 십일조를 남겨놓고 모두 시민들의 공유재산이 될 것이다. 그와 그의 공모자들을 죽이는 사람은 성스러운 자, 신앙이 돈독한 자로 인정될 것이다. 모든 아테네인들은 각자 자신이 속한 부족과 공동체에서 잘 자란 짐승을 제물로 차려놓고 다음과 같이 그를 죽이겠다는 맹서를 해야 한다. “나는 가능하다면 내 손으로 직접, 아테네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거나 민주주의가 무너진 뒤 여하한 관직을 차지하는 자, 혹은 스스로 독재자가 될 목적으로 무기를 드는 자와 그를 돕는 자를 죽일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를 죽인다면 나는 그 살해자를 성스러운 자로 인정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테네인들의 적을 죽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또한 그의 몰수된 재산을 매각하여 그 수익의 반분을 그를 살해한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도록 말과 행동과 투표로써 지지할 것입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그를 살해하는 도중에 죽거나 혹은 독재자를 죽이려다가 실패한다면, 나는 그와 그의 아이들을 보살필 것입니다. 나는 아테네인들에게 적대적이었던 모든 맹서는 지금부터 해체하고 말소시킬 것입니다.” 모든 아테네인들은 디오니소스 축제 직전에 살찐 제물을 차려놓고 이 맹서를 규칙적으로 행하여야 할 것이다. 이 맹서를 잘 지키는 자에게는 풍요로움이, 맹서를 깨뜨리는 자와 그의 가족에게는 파멸이 주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아테네 민주주의를 창조하고 옹호했던 사람들의 정신이었다. 민주주의와 평등을 진실로 신봉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 아테네인들이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를 연구함으로써 스스로를 보다 강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김종철 옮김)

글쓴이 정보

C. L. R. 제임스

C. L. R. 제임스(Cyril Lionel Robert James, 1901―1989) ― 아프리카계 트리니다드인으로 태어나 영국, 미국, 캐나다 등에서 주로 활동한 역사가, 저널리스트, 사회주의 사상가 및 활동가. 주요 저서로는 아이티 혁명사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검은 자코뱅》(1938)과 《국가자본주의와 세계혁명》(1950) 등이 있다.

Monday 10.24.22
Posted by HUE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의 지난 하루 동안 페이스북 계정에 포스팅한 10건의 글(10건 모두 약자 응원글)

Thursday 09.29.22
Posted by HUE
 

<당신이 한 가지 일을 할 때마다>

"당신이 한 가지 일을 할 때마다, 마치 <세상 모두>가 보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라" - 토마스 제퍼슨

"당신이 한 가지 일을 할 때마다, 마치 <세상 모두>와 <하늘의 신>과 <장차 태어날 후손들>이 볼 것처럼 행동하라" - by Hooeui

Saturday 09.24.22
Posted by HUE
 

< 우리가 '상대진영 조롱'과 '자기진영 찬양'보다 '약자지원 응원'을 해야 하는 이유>

< 우리가 '상대진영 조롱'과 '자기진영 찬양'보다 '약자지원 응원'을 해야 하는 이유>

"나는 과거에 대한 것보다 미래에 대한 것에 더 흥미를 느낀다. 왜냐하면 내가 살 고 싶은 곳은 미래이기 때문이다" - 알버트 아인쉬타인

Saturday 09.24.22
Posted by HUE
 

침묵하는 자의 우울감과 말하는 자의 행복감

지난 35년 동안 경찰 조직 내에서 만난 선배들은 대부분 퇴직했습니다.

퇴직한 많은 선배들이 재직 중 혼신을 다해 공직을 수행했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은 퇴직 후 자신이 맡았던 업무와 관련해 우리 사회의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음에도 갑자기 침묵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하게 보입니다.

그들이 퇴직한 후 침묵하는 모습은, 재직 중 열정적으로 업무를 수행했던 존경스러운 모습과 크게 대조를 이룹니다.

그들은 퇴직 후 시간이 더 많아지고, 마음의 여유가 더 많아졌을 텐데도 말입니다.

일부 퇴직 선배들이 우울감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거나 일부는 연락이 안되어 안타깝습니다.

반면에 공무원 생활을 한 적이 없는 전국의 그리고 해외의 페친들이 우리 사회의 심각한 약자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응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즐겁습니다.

약자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루한 저의 글을 인내하는 페친들, 그리고 공개 응원을 표하는 페친들께 감사와 존경을 표합니다.

약자글에 인내하거나 용기를 내어 응원하는 페친들은 사람들이 (이 땅에 여전히 희망이 있다라는) 믿음을 갖을 수 있는 확고한 증거 자체입니다.

Monday 09.19.22
Posted by HUE
 

정치인이 책을 추천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은 위선이다.

정치인의 책 추천이 위선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방법으로 1) 추천된 책의 작가가 인기가 있는지, 2) 작가가 우리나라 작가인지, 3) 그 정치인이 평소 책을 추천한 적이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정치인이 추천한 책의 작가가 인기 있는 우리나라 작가이고, 그가 지난 5년 간 책을 추천한 적이 없다면 그의 추천은 위선일 가능성이 높다.

*서평을 자주 쓰는 존경하는 페친은 1) 작가의 인기를 구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인기 없는 작가들의 책을 주로 소개하고 2) 국내 작가와 외국 작가를 구분하지 않고 3) 수백권(어쩌며 수천권일지도 모름)의 서평을 쓴다. 이런 분의 서평은 진심이다.

사실 이런 정치인이 위험한 것은 자신을 의식 있는 지식인처럼 보이고 싶어하는데 있다.

한 정치 셀럽처럼 정권의 정점까지 올랐다가 정권을 다른 진영에 빼앗기고도 자신이 얼마나 똑톡한지 자랑하고 있다.

정권의 정점에까지 올랐다가 다른 진영에 정권을 빼앗긴 후 정치 행위의 끝자락 부근에서 서성이는 사례가 우리의 역대 정부와 세계의 역사 속에 있었나?

재직 중 노벨상까지 받고 정권을 자기 진영에 인계한 성공한 대통령이 퇴임 후 침묵을 지킨 사례를 배워야 한다.

미국 전대통령 카터가 퇴임 후, 취임 전부터 다니던 조그만 교회에 돌아가 어린이를 위해 봉사활동을 이어나가고, 그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경호차를 이용하지 않고 90이 넘은 고령에도 걸어서 귀가한다는 뉴스를 듣는 것은 즐겁다.

그가 퇴임 후 지금보다 건강할 때는 집없는 사람들을 위해 집을 건축하는 노동 봉사를 하던 모습은 세계를 감동시켰다.

* 아래 사진은 4년 전에 본 사진인데 워낙 인상적이어서, 이 포스팅 글을 쓰다가 생각이 떠올라 이 포스팅 글을 올린 후 구글링해 봤더니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봐도 사진이 감동적이어 추가합니다. *^^*

* 아래 사진을 누르면 원래 사이트로 이동합니다

Wednesday 09.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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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권자들은 진실을 알고 있다

- 보편복지가 자신들에게 지옥문이라는 것을. 지옥문(복편복지)이 열리면,

1. 금융, 산업계는 권한없는 재정부서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2. 추운 겨울을 맞이한 재정 공무원들은 사태를 방조한 재정권자에게 분노한다.

3. 부하 관료에게 미움을 받는 재정권자는 퇴직후 금융, 산업계에 취업신청시 재정부서의 승인을 얻지 못하고 백수가 된다.

4. 퇴직한 재정권자는 지옥문에 영원히 들어선 것이다.

- 한 중앙 재정부서의 중간 관리자에게 들은 이야기를 지옥문(시적 표현)으로 적어봤습니다.

Saturday 03.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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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공화당, 선별복지주의에서 보편복지주의로 갈아탄 이유

[ 바이든 대통령은 변혁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 뉴욕타임스 2021.3.11 )

(번역 by Hooeui)
이번 주는 미국의 최근의 정치 역사상 가장 중대한 몇 주들 중 한 주가 되었습니다.

막 법안이 통과된 코로나19 구제법은 우리가 일생 동안 경험한 가장 중요한 법률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이 법은 코로나19에 국한된 효과만을 나타내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국민 지원 정책에 1조원이 들어갑니다. 흑인 농부들은 보상금 명목으로 4조원을 받을 것입니다. 건강 보험 보조금에 대한 대규모 예산 증액이 있습니다. 아동 세금 감면 정책 같은 새로운 정책들 중 많은 정책들이 코로나 사태가 끝나고도 계속 지급될 것입니다.

맨하탄 연구소의 마이클 핸드릭스가 말한 것처럼, 미국은 2차대전 중 현재 화폐가치로 4.8조 달러를 지출했습니다. 역사상 미국은 코로나 사태와 싸우기 위해 5.5조 달러를 이미 지출했습니다.

경제 양극화 시대에 의회는 사람들 사이에서 폭넓게 유명해졌습니다. ‘모닝 컨설트 서베이’에 의하면, 공화당 성향의 미국인 중 60%를 포함하여 전체 미국인의 75%가 이 법을 지지합니다.

연방 의회의 공화당 의원들은 이 법안에 반대투표를 했습니다. 그러나 공화당은 이 법안을 양당의 대규모의 극단적 대치로 비화시킬 뜻을 내비치지 않았습니다. 내가 목요일 아침에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 (보수 성향의) 폭스 뉴스의 홈페이지에서는 이 코로나 구제법에 대해 단지 2개의 기사만을 올렸으며 영국 왕실이나 유명인의 비리를 들추는 기사들을 수십 개 올렸습니다.

다소간 낮은 자세를 취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진보적인 정책들을 추진하며 앉아서 하품이나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정책들은 만약 샌더스가 대통령이 되거나 또는 1920년대의 워렌 대통령이라면 반향이 아마도 컸을 것입니다.

현재는 레이건 대통령의 혁명이 시작된 해인 1981년과, 정반대인 것만 빼고는, 동일합니다.

현재의 시간은 정부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미국인의 생활에서 정부의 역할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시점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구조의 기초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이동하는 기초에 올라탔습니다.

레이건주의는 1970년대의 경제적 고통에 대한 올바른 대응이었던 반면, 바이든주의는 경제적 문제의 매우 이질적인 상황에 감각있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통계수치가 보여주는 한 장면이 수십개의 현 상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라즈 체티가 이끄는 한 연구팀에 의하면 1970년대 30대 연령 인구의 90%가 그들의 부모들이 같은 나이대에 벌던 것보다 더 많이 벌었습니다. 그러나 2010년에는 단지 50%만이 그의 부모들이 같은 나이대에 벌던 것보다 많이 벌었을뿐입니다.

미국 역사를 통해 하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열심히 일한다면 당신은 경제적인 안정을 성취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2000년 이후 출생한 세대와 Z세대와 미국 전역의 여러 다른 방식의 사람들에게는 진실이 아닙니다. 이러한 현실은 팬데믹이 사람들의 불안을 확대한 매우 특이한 감정적인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불과 10년전만해도 연방정부가 마구잡이로 돈을 찍어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거나 엄청난 부채비용을 감당하는 것없이 막대한 부채를 정부가 부담할 수 없을 것이고 생각했습니다. 이같은 걱정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수년동안 높은 정부부채와 느슨한 통화정책을 시행해 왔습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규제정책은 잠시 보류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십년동안 상상하지 못한 통화정책과 예산정책은 현재 경험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공화당이 경기부양을 위해 예산정책의 보수주의를 버렸습니다. 이 정책은 부자를 위한 방만한 세금 감면정책이 되는 효과를 얻었습니다.

정부의 역할이 재정립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경제적인 불평등과 불안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인식이 등장했습니다. 심지어 톰코튼, 미트 롬니같은 공화당 의원들도 미국 노동자를 위해 임금을 실질적으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회주의가 아닙니다. 이것은 경제를 일으키기 위한 통제권을 연방정부가 장악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은 기업의 능력을 억제하는 정책이 아닙니다. 정부에 대한 미국인들의 믿음은 여전히 낮습니다. 이것은 정부 변화입니다: 정부가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 줌으로써 막대한 규모의 예산을 재분배하는 것이며, 국민들이 올바를 방향으로 돈을 쓸 것이라는 믿음을 정부가 갖는 것입니다.

공화, 민주 양당은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순풍을 등에 업고 나가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바이든이 코로나 구제정책을 통과시키기 위해 양당의 대치를 피하기로 결정한 것이 오바마가 양당의 대치를 유발한 결정보다 더 좋은 결정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나는 필리버스터(의회의 법안 통과 지연 전략)가 사라질지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의회내에서 양당의 분쟁의 수위가 낮아질 것처럼 보이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극도로 악화된 경제 여건이 공화당을 밀턴 프리드먼의 자유주의 경제체제으로부터 밀어냈습니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의 인기영합주의로 나가도록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공화당은 새로운 시대에 예산 분배방식에 대해 민주당과 싸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문화전쟁에서 싸워 선거를 이겼습니다. 미국 기업 연구소 유발 레빈이 연구한 것처럼 우리는 정당의 구조조정 없이도 정책의 구조조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공화당은 투표를 얻기 위해 여러 가지 문화적인 방법이 있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나는 우리가 함부로 빌린 돈을 소비하는 세상이 온 것을 걱정합니다. 위대한 워싱턴 포스트의 경제 칼럼니스트인 스티븐 펄스타인의 은퇴 컬럼의 비판적인 제목이 내게 말한 것처럼; ”민주당의 진보적인 퍼레이드에서, 돈을 빌리는 것은 자유다. 자신들을 위해 소비하는것과 이자율은 결코 상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소득 불균형, 아동 빈곤과 경제적 불안은 우리시대의 문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제거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가치가 있습니다. 최초로 바이든은 클린터/오바마의 좌편향 시대의 제 3막을 연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것입니다.

Source: https://www.nytimes.com/2021/03/11/opinion...
Friday 03.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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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의 기본소득법은 루즈벨트의 뉴딜(New Deal) 정책이다.

나는 전율한다. 바이든 대통령의 기본소득 지원법 통과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빈곤 노인을 구제한 뉴딜(New Deal)정책처럼 빈곤 아동을 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방글라데시에서 감명을 받았다. 이 나라는 50년 전 이번 달에 건국 되었다. 이 나라는 절망과 가난의 상징이었다.

헨리 키신저는 ‘바구니 사례’라며 언급하였는데 이 이미지는 전세계에 방글라데시의 기아로 알려졌다.

그러나 방글라데시는 교육에 투자했으며 특별히 소녀의 교육에 투자했다.

교육받은 여성들은 의류산업과 비영리단체에 힘이 되었으며, 이것들은 이 나라를 변모시켰다.

방글라데시는 최근 수년동안 중국보다 빠른 경제 성장을 즐기고 있다. 이 나라 인구의 평균 수명은 미국이 일부 지방보다 높다.

내가 보기에, 뒤쳐지고 가난한 시민들에 대한 투자는 단지 해야할 옳은 일일뿐만 아니라 한 나라를 급격히 발전시키는 전략이다.

Source: https://www.facebook.com/100044269772208/p...
Thursday 0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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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하는 영국 왕실(뉴욕타임스 해밀턴 놀란, 번역 by Hooeui )

- 이 나라는 2021년 현재까지 왕실 제도를 유지하는 나라들 중 혁식적인 개선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해밀턴 놀란 ( 번역 by Hooeui )

당신이 시청했을지도 모르는 최근의 한 인터뷰는 영국 왕실이 중상모략과 인종차별의 끔찍한 소굴이라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우리의 누구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영국 왕실 제도가 비인간적인 계급주의의 현실적인 실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영국 왕실을 더 좋은 왕실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사실 의미가 없습니다. 병에 가득 찬 독을 신선한 음료수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병에 아무리 많은 설탕을 넣는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영국 왕실에 대한 우리의 정당한 처방은 영국 왕실 제도 전체를 한데 묶어 불태우는 것입니다. 그 후 영국 왕실 가족 구성원들은 재를 쓸어 모아 근처의 쓰레기 통에 버린 후 생계를 위한 새로운 노동의 삶을 시작하는 기념식을 갖는 것입니다.

그동안 왕실의 존재는 정부가 국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거나 해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때, 정부를 대신해 영국 왕실이 볼만한 구경 거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정부가 모든 가정을 근사한 삶의 수준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 힘든 노력을 하는 것보다 왕실 가정 하나를 호화로운 동화같은 삶으로 끌어 올리는 것이 그동안 언제나 쉬웠습니다.

보통의 국민들은 이 작고, 우상화되고, 전혀 가치없는 엘리트의 생활방식에 돈을 지불하는데, 그밖의 다른 것에 돈을 지불하는 것보다 많은 돈을 지불합니다. 도대체 2021년 현재 왕실 제도를 갖고 있는 나라 중 어떤 나라가 혁신적인 황실 개혁을 갖추지 못하고 있단 말입니까?

미국은 인류에 대해 많은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통령들이 국가적인 부끄러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엉터리같은 우연히 발생한 부자 철부지들에게 오른쪽 다리를 뒤로 빼고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도록 요구받지는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사를 법적으로 받을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는 철부지들은 수세기 전에 국가의 가장 큰 강도떼였던 사람의 자녀의 자녀의 자녀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유명인사를 향해 우리 스스로 자청해서 최면에 걸린 자본주의 중독 증상을 갖고 있지만, 왕실은 유명인사보다도 더 지독한 복합체입니다. 즉, 부시 가족이나 킴 카다시안 가족들이 보석으로 치장된 종교적인 숭배와 제국주의의 화려함으로 장식한 것과 같습니다.

왕실 제도가 불공평에 대한 최고의 존경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왕실 제도는 윤리적 가치를 기초로 한 것이 아닌 상속의 우연한 발생을 기초로 하고 있으며, 작은 그룹의 사람들이 대중으로부터 갈취한 수백만달러의 돈으로 사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국민의 감정적인 신들로 숭배받고 있는 반면, 그에 대한 댓가로 그들은 단지 대중을 위한 즐거움이 되어주는 의무를 수행할뿐입니다.

6천만명 이상의 영국 국민 중 많은 사람들이 가난 속에 있으며, 그들은 이 과도한 인형극을 증오하기보다는 오히려 기념하도록 교육받았습니다. 그들은 누군가가 꿈같이 아름다운 삶을 사는 장면을 보면, 심지어 그것이 자신들이 아니더라도 행복을 느껴야 한다고 들었으며, 다른 모든 사람들을 위해 공평을 요구하기보다는, 왕실의 모습을 보는 것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며 살도록 요구받았습니다.

왕실은 감사해야 합니다. 시민들이 칼 막스의 자본론 책을 읽는 대신 왕실의 쇼를 시청하고 있다면 말입니다.

왕실의 계획은 잘 작동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영국의 성인 5명 중 4명은 여왕에 대해 긍적적인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삶을 관전하는 것은 거부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멍청한 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시간이 흐르며 바뀔 것입니다. 새로운 왕자들과 공주들이 태어날 것이며, 화려한 결혼식이 거행될 것이지만 특이한 괴짜들이 안락한 왕좌를 차지할 것입니다.

이들이 잠시 동안은 대중의 관심을 차지하도록 임무를 부여받았지만, 결국은 이들의 책동은 커다란 둥지인 영국 왕실 자체를 위로부터 무너뜨리는 흰개미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들의 책동은 노동자들의 활력을 먹고 성장하며, 왕실을 평범한 가정으로 만들 것입니다.

왕실 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먼저 당신은 그들의 가정을 없애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재산을 없애야 합니다. 그들의 작위 직함을 없애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국민에게 속해야 합니다. 그들의 소굴이 그들을 너무 오랫동안 재워주었습니다.

왕실 가족에게 좋은 뉴스는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직장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현장 경험이 없다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들은 테스코 마켓같은 곳에 영광스럽게 취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들의 인생에서 최초로 정직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 얼마나 놀라운 기회인가. 우리 사회의 선각자들이 우리에게 들려준 것처럼 힘든 일은 자존감을 높이는데 좋습니다. 나는 그들이 곧 이전보다 더 행복해 질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https://www.nytimes.com/2021/03/09/opinion/meghan-harry-abolish-monarchy.html?smid=fb-nytimes&smtyp=cur&fbclid=IwAR0oxaoGxGKpQJnsOp004Su_mjIk3ZLsJlmNsJdCxzMHZEqHxBE3rA4gcI4

Wednesday 0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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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실에서 태어난 아기의 피부색 논란 속에 메간과 해리 부부가 영국 왕실을 떠나며 (Michael Moore,번역 by Hooeui)

해리왕자와 메간이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끔찍하고 절망적인 인터뷰를 하는 것을 봤습니다. 영국 제국은 400년 전 미 대륙에 최초로 노예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어제밤 자신들의 영광스러운 잔인함속에서 왕실의 현재의 인종차별을 보여주었습니다.

-메간의 아이들은 얼마나 검정색 피부여야 하는가? 왕실은 메간의 아이와 메간의 남편인 해리왕자를 위한 어떤 보호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무너지고 위축된 메간은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완고한 왕실은 그녀가 정신건강치료를 받는 것을 막았습니다. 절망에 빠진 메간은 자살을 고려했습니다. 해리왕자는 데자뷰를 보고 무서워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의 모친이 받은 대우가 재현된 것이었습니다. 왕실을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찰스는 해리가 돌아오도록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 인터뷰는 오늘 커먼웰스데이(영연방을 기념하는 날, 제국의 날을 1958년 개명함)에 영국에서 방영될 것입니다. - 그렇습니다. 커먼웰스(영연방) 내에 사는 거주자의 40%는 유색인입니다. 영연방 내의 누구도 유색인을 놀라워하지 않습니다. 영국 언론들은 메간을 언급할 때 원숭이, 악마의 씨, straight outta Compton(욕설 랩)의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미국의 전통적인 백인 우월주의가 어디에서 왔으며 모국이 오늘날 그것을 어떻게 다루는 지 보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오프라 쇼가 세계여성의 날인 어제 백인 우월주의에 대한 특집을 방송할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정신 건강과 자살을 논의 하는 것은 도움이 됩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을 살릴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메간에게:

-2018년 당신의 결혼식을 보며,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오 하느님 그녀는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당신과 해리왕자는 인종편견주의자들이 검은 결혼식이라고 봐왔던 것을 하는군요. 그 결혼식은 놀라운 흑인인 미국인 설교자의 불같은 설교와 흑인 성가대의 열정적인 성가로 이루어졌습니다. 교회내에 있던 왕실 사람들과 부자들의 얼굴이 결혼식 내내 돌처럼 굳어진 얼굴로 앉아 있었습니다. 내 생각에 당신은 잘 해냈습니다.

언론은 즉시 당신을 추적했습니다. 유감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후에도 줄곧 잘 해냈습니다. 고향 집 미국으로 온 것을 환영합니다. 이곳은 완벽한 곳이 아닙니다. 오늘 조지 플로이드를 죽인 경찰관의 살인 재판이 미니애폴리스에서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곧 태어날 아기 소녀들에게 축하를 보냅니다. 이 미친 세상에 곧 태어날 여러분에게.

https://www.facebook.com/mmflint/posts/265517161612562

Tuesday 03.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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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별복지로 약자들이 받는 고통 3가지

1. (신청 전) 경제적 약자들이 직장상사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 지급신청을 위해 근무시간에 관공서의 방문을 위해 휴가, 조퇴를 해야 합니다.

2. (신청 시) 경제적 약자들이 지급심사 공무원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 심사 신청 전후 심사가 통과되기를 기다리며 불안해 합니다.

3. (수령 후) 경제적 약자들이 시장상인들과 이웃들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 약자들의 소비행동에 대해 공짜돈을 갖고 과소비한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습니다.

Monday 03.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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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별복지(selective welfare) = 차별복지(discriminatory welfare)

- 가난한 자를 위한다고 말하지만

  1. 예산이 더 많이 들어갑니다.

  2. 가난한 자에게 불리합니다.

  3. 일부 부자들이 좋아합니다.

  4. 빈자의 인권을 침해합니다.

  5. 재정부서가 재정권을 갖습니다.

Monday 03.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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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별복지(selective welfare)의 폐해성과 보편복지(universal welfare)의 우수성

- 이 그림은 사람들이 Equality와 Equity를 설명할 때 자주 사용할 뿐만 아니라,

선별복지의 필요성을 설명할 때도 자주 사용하는 사진입니다.

- 그러나 사실은 반대로 '선별복지의 인권침해'를 설명하기 좋은 사진이며,

오히려 '보편복지의 우수성'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사진입니다.

이 사진을 통해 보편복지 우수성 4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

보편복지가

1. 예산을 더 소모하지는 않습니다.

2. 가난한 자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습니다.

3. 부자에게 지급된 지원금은 국가가 정밀하게 회수합니다.

4. 부자에게 돈을 주었다 뺐어, 표를 놓칠 필요가 있습니다.

-------

먼저 이 사진에는 상자(복지)를 분배해주는 국가가 빠져 있습니다. 국가의 개입 없는 복지는 허구입니다. 특히 세금을 통한 재원 확보가 없는 복지는 허구입니다.

왼쪽 사진처럼 3명이 각각 상자를 하나씩 갖고 있고, 사진 바깥에 국가가 상자(복지 예산) 몇개를 갖고 있다고 가정한 후 먼저 선별, 보편복지의 절차를 살펴보겠습니다.

가. <선별복지의 절차>

국가는 국민 중 불특정한 키가 작은 사람에게 지급할 나무 상자(재원)를 마련한 후, 사람들에게 상자를 준비했으니 자신의 키가 작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상자를 신청할 것을 홍보합니다.

보라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은 국가를 찾아가서 자신이 얼마나 키가 작은 지를 설명합니다.(인권침해 발생)

국가가 키를 재어본 후 준비한 상자를 보라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에게 지급합니다.

이후 국가의 세금부서는 하늘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에게서 상자 한개를 징수합니다.

그러면 오른쪽 사진처럼 세 사람 모두 야구경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선별복지를 시작한 후 추가로 소모된 상자(예산)는 0개입니다.

나. <보편복지의 절차>

앞 사례처럼 왼쪽 사진에서 설명을 시작하겠읍니다. 국가는 별도의 상자 세개를 마련한 후, 홍보도 하지 않고, 신청도 받지 않습니다. 우선 이미 상자를 한개씩 갖고 있는 세 사람에게 상자 한개씩 추가로 나눠줍니다.

이후 국가의 세금부서는 평소처럼 세원조사를 통해 하늘색 티셔츠 입은 사람에게서 상자 두 개를, 붉은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에게서 상자 한개를 회수(징수)합니다.

그러면 오른쪽 사진처럼 세 사람 모두 야구경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균등복지에 신규로 소모된 상자(예산)는 0개 입니다.

다. <결론>

1. 보편복지는 예산이 더 소모되지 않습니다.

선별복지와 보편복지의 예산 소모는 동일합니다.

지급절차만 보면 보편복지가 더 많은 예산이 사용될 것 같은 착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복지의 후처리 절차인 세금징수절차도 보아야 합니다. 세금징수절차도 국가의 복지절차의 일환이기 때문입니다.

2. 보편복지는 가난한 자에 대한 인권침해가 없습니다.

국가는 가난한 사람의 신청을 접수하지도, 심사하지도 않고 (인권침해 없이) 복지문제를 해결했습니다.

3. 부자에게 돈을 더 주지 않습니다. 부자에게 지급된 보조금은 세무부서가 정밀하게 환수합니다.

"이재용에게 돈을 주는 것은 잘못된 정책"이라고 비난하는 분들은 국가의 세금부과기능을 고려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국가의 복지행정의 절반만 본 것입니다.

지구상에서 타인의 돈을 꼼꼼하고 지체없이 강취하는 가장 강력한 단체는 국가입니다. 국가의 필요성을 부인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국가의 징세 능력을 믿으세요.

4. 두 제도가 동일한데도 굳이 부자에게 돈을 줬다 뺐어서 표가 떨어지게 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네. 그럴 필요가 있습니다. 그동안 부자의 눈치를 보다가 노동자의 자살률, 노동시간, 산재사망률이 최고인 것도 모르고 지냈습니다.

약자의 인권을 방치한 세월이 지나간 날들로도 충분한데 여전히 부자들의 표를 우선 걱정해햐 하나요?

당연히 저는 성실한 경제활동을 통한 부자의 생성과 존속을 지지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부자들의 표를 걱정하기보다는 약자들의 인권을 걱정해야 할 때입니다.

부자들조차 어느누구도 인권이 침해당하지 않는 국가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국민은 똑똑합니다. 인권존중의 정책을 제시하고 시행할 때 국민의 다수가 지지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부자의 표를 잠간동안 잃어 버리면 결국 부자를 포함한 모두의 표를 얻을 것입니다.

약자의 인권을 보호한 역사가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이며,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가 국민의 발전의 역사입니다.

Sunday 02.28.21
Posted by H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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